영어로 '은퇴'를 의미하는 'retirement'의 어원은 프랑스어 'retier'에서 왔습니다. 're'가 ‘뒤’, 'tier'가 ‘잡아 빼다’라는 뜻으로, ‘뒤로 물러서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즘은 60대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인데요. 그래서인지 은퇴(retire)를 사회생활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re-tire) 다시 달린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은퇴 준비는 인생 후반전을 힘차게 달려나가기 위해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퇴직연금을 잘 굴려야 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특히 가입자가 직접 운용을 해야 하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은 예금부터 펀드, 상장지수펀드(ETF)까지 정말 다양한 상품이 있습니다. 웬만한 투자 경험이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퇴직연금으로 운용하기 좋은 금융상품 4가지, 타이어(T.I.R.E.) 전략을 알려 주고자 합니다. 4개 타이어로 잘 굴러가는 자동차처럼 △타깃데이트펀드(TDF) △인컴펀드(Income Fund) △리츠(REITs) △ETF 이렇게 4가지만 활용해도 퇴직연금을 굴리기가 한층 편해질 겁니다.
첫 번째, TDF부터 알아보겠습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 등 위험자산과 채권 등 안전자산의 투자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산배분형 펀드입니다. 은퇴 시점이 많이 남았을 때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그 비중을 낮추고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합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사전에 정해진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로)라는 자산배분곡선에 따라 비중을 조정합니다. 은퇴 시점까지 생애 주기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을 점차 줄여가는 모습이 비행기가 착륙하는 궤도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TDF는 목표 시점이 중요한 펀드이므로 펀드명에 '2045'나 '2050'같이 목표(은퇴) 시점을 의미하는 4자리 숫자가 붙습니다. 예상 은퇴 시점이 2042년이라면 TDF2040이나 TDF2045를 선택하면 됩니다. 목표 시점은 가입자의 선택이기에 빠르게 하면 안전자산 비중이 높아지고, 반대로 늦추면 위험자산 비중이 높아져 투자 성향에 따른 선택도 가능합니다.
이처럼 은퇴 시점에 맞춰 선택하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해 주는 운용이 TDF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투자 의사 결정에 자신이 없거나 수시로 챙기기 어려운 분 또는 경험이 적은 초보 투자자에게 적합합니다. 정해진 글라이드 패스에 따라 움직이므로 예상치 못한 금융시장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퇴직연금 운용의 가장 큰 장애 요소로 가입자의 무관심이 꼽히는 현실 속에서 TDF는 퇴직연금자산 증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컴펀드입니다. 인컴펀드는 채권, 고배당주, 리츠(부동산 간접투자 상품) 등에 투자해 이자, 배당, 임대료 등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합니다. 투자수익 유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매손익’으로 투자대상을 매도할 때 가격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 또는 손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언제 어느 정도 발생할지 예측이 용이한 ‘인컴수익’으로 자산을 보유하는 기간 얻는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수익입니다. 넓게 보면 직장인이 받는 월급도 일종의 인컴수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컴펀드는 자산을 보유하는 동안 얼마나 지속적으로 현금 흐름이 발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자를 더 주는 회사채, 배당을 더 많이 주는 고배당주 투자 등을 통해 ‘예금금리+α’를 목표로 하기에 변동성을 줄이려는 투자를 할 때 좋습니다.
물론 인컴펀드 투자에도 주의할 사항은 있습니다. 인컴수익이 수익률을 일정 부분 방어해 주지만, 상대적으로 덜할 뿐 변동성에 따른 매매손실이 인컴수익을 넘어서는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컴펀드도 분산투자를 추천합니다. 단일 인컴펀드보다 배당주, 부동산, 인프라 등 다양한 대상에 분산 투자하면 변동성을 더 낮출 수 있습니다. 인컴펀드는 초과수익보다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는 보수적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이라 하겠습니다.
세 번째, 리츠는 자금을 모아 우량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일종의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입니다. 통상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하므로 직접 부동산에 투자해 임대수익을 얻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특히, 리츠는 저금리 상황에서 매력적인 배당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자본조달 비용이 적게 들어가면서 배당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소액으로 우량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국내 상장 리츠의 경우 커피 한두 잔 값으로 오피스 빌딩, 백화점 등 우량 건물주가 될 수 있습니다. 부동산 직접투자와 달리 주식처럼 원하는 시점에 매매할 수 있어 환금성도 높습니다. 최근에는 리츠의 기초자산이 오피스, 리테일을 넘어 해외 우량자산,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다양한 리츠에 분산 투자도 가능합니다.
부동산 임대수익을 추구하지만 리츠 역시 안전자산은 아닙니다. 부동산시장에 악재가 발생하면 리츠도 영향을 받는데 부동산 임대율이 낮아지거나 부동산시장 가치가 떨어지면 리츠 배당수익률이나 시장가격이 함께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최근 배당수익률이 높은 리츠보다 3년 이상 꾸준히 배당한 리츠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선호한다면 중장기적 관점으로 리츠에 투자해 보기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ETF입니다. ETF는 주식처럼 쉽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상장펀드로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장기간 운용하는 퇴직연금자산은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펀드와 주식의 장점이 더해진 ETF를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ETF는 펀드이기에 분산 투자돼 있어 개별 종목의 등락에 영향을 적게 받습니다. 개별 종목은 증시 상승기에도 종목 악재로 가격이 하락할 수 있지만 ETF는 시장이나 산업 전체에 대한 투자 의사 결정만 잘하면 됩니다. 또 고배당 ETF 등과 같이 운용 스타일에 따른 투자도 할 수 있습니다. 일반 펀드는 매도 시 다른 펀드를 매수하기까지 투자에 공백이 발생하게 되지만 ETF는 실시간 매매가 가능하므로 시장 변화에 좀 더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퇴직연금을 증대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다만, 장기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레버리지ETF, 인버스ETF 등 퇴직연금계좌에서는 투자할 수 없는 ETF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과거 수익률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전망과 본인 투자 성향에 맞는 금융상품을 잘 선택하는 것입니다. 승용차용 타이어와 버스용 타이어는 다릅니다. 승용차가 잘 달린다고 해서 버스에 승용차용 타이어를 장착할 순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굴리고 싶은 투자자와 적극적으로 굴리고 싶은 투자자에게 적합한 금융상품도 각각 다를 것입니다.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는 금융상품을 단번에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충분한 투자 경험을 쌓아 간다면 나에게 맞는 금융상품과 투자 스타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