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했다가 행정청에서 거절당한 동성커플 열한 쌍이 동시다발적인 불복 소송을 예고했다. 대법원이 최근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사법부가 혼인신고를 수리해줘야 한다고 판결한 사례는 없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모두의 결혼'은 10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커밍아웃의 날인 11일 전국 법원 6곳에 11개 혼인평등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10월 11일은 1987년 미국 워싱턴에서 동성애자 권리 행진이 있었던 날이다. 이날 기자회견엔 최근 대법원에서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은 소성욱씨 부부 등 20명의 동성커플이 참석했다.
이 소송의 원고는 관할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가 반려당한 동성부부 열한 쌍이다. 현행 민법 812조는 '혼인은 가족관계법에 따라 신고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고만 규정하지만, 결혼을 이성 간 결합으로 보는 헌법∙민법 해석에 따라 행정당국은 동성 결혼에 따른 혼인신고는 수리하지 않고 있다.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과 관계없이 법적 혼인의 권리를 보장받자는 게 이번 소송의 목표다. 이를 위해 이들은 혼인신고를 받지 않은 개별 구청을 상대로 "불수리 처분을 취소하라"는 신청서를 내고, "민법상 혼인에 동성혼을 배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할 계획이다.
조숙현 변호사는 "동성동본 금혼제, 호주제, 부성승계 강제 원칙이 폐지된 것처럼 이번 소송도 가족법상의 차별적 법률 규정을 사법 절차를 통해 개선하려는 과정 중 하나"라고 발언했다. 백소윤 변호사는 "아시아에선 대만을 포함, 세계 39개국이 동성혼을 법제화했다"고 설명했다.
당사자 발언도 이어졌다. 정자 기증을 통해 딸을 출산한 김규진씨의 배우자 김세연씨는 "아이가 다쳐 응급실에 갔을 때 내가 법적 부모가 아니란 이유로 치료가 늦어지진 않을지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안전하게 꾸릴 수 있도록 관심 가져 달라"고 눈물을 보였다.
원고 황윤하씨의 어머니 한은정씨는 "팔순을 넘긴 제 부모님도 아직 동성혼이 안 되냐고 묻더라"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부로 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는 것에 차별이 있을 순 없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은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혼인평등법(동성혼인 신고를 가능하게 하는 민법 개정안)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국내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목표로 하는 소송이 제기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영화감독 김조광수 부부는 2013년 공개 결혼식을 올린 뒤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듬해 불복신청을 냈다. 당시엔 1∙2심에서 각하 결정을 받고 대법원에 재항고하지 않아 패소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