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수읽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어찌 본다면 표현만 다를 뿐이지, 대국 첫 수부터 종국까지 모든 수를 수읽기의 일부로 볼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다. 이 중요한 수읽기 실력을 늘리는 데엔 맥(脈) 공부가 필수다. 맥은 대부분 장면에서의 대체적인 급소 자리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수읽기 패턴 인식을 익히는 과정에선 가장 중요하단 얘기다. 바둑을 두면 너무 다양한 형태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중심 원리 없이 판단 근거를 갖기란 쉽지 않다. 이 과정이 숙달되면 형태마다 핵심을 찾기 쉬워지는데, 그러다 보면 한 부분에 많은 수를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오른다. 피카소의 그림이 후기로 갈수록 선으로만 표현하듯, 수순의 이유를 하나하나 드러내고 제거하다 보면 원형만이 남고, 결국 형태에서 자유로워진다.
신진서 9단의 좌상귀 침입에 이창호 9단은 장고에 빠진다. 이윽고 선택한 수법은 백1, 3의 수순. 패를 감수한 채 타이트하게 메워가는 방법이다. 뒷맛 없이 확실하게 방비하고자 했다면 7도 백1에 뻗는 게 맥이다. 다만 실리로는 약간 손해다. 흑6까지 반집 승부의 형태. 이창호 9단이 실전의 수순을 선택하자 패를 둘러싸고 복잡한 진행이 이어진다. 다소 늘어진 패로 보이지만 흑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꽃놀이패. 그러나 이창호 9단은 아랑곳 않고 실리로 최대한 버텨간다. 백29 역시 버팀 수의 일환. 8도 백1로 좌상귀 수상전을 보강할 수 있지만 흑6을 선수한 뒤 흑8로 끝내기할 경우 미세한 끝내기 형세가 된다. 결국 실전 흑30으로 흑이 먼저 수를 메우며 끝없는 패 공방전이 펼쳐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