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런 기록, 클럽 10분 컷, 디제이, 5성급, 하루 2런 등.'
한 포털 사이트 카페의 '실전 헌팅 필드 레포트'라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런'은 성관계를, 10분 컷은 '클럽에서 10분 안에 이성을 데리고 나왔다'는 뜻이다. '필드 레포트'는 직접 경험하고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을 '픽업 아티스트'라 칭하며 이성과 쉽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강의하는 온라인 업체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겨 났던 '연애 학원'이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긴 형태다. 문제는 단순히 이성에게 호감을 얻는 비법만 알려주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곳들 대부분은 남성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데 9일 기준 4,7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카페 운영자 A씨의 강의를 들어보니, 사실상 성범죄를 조장하는 듯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운영자와 회원이 서로 공유하는 행태도 비일비재했다.
A씨 강의는 이성에게 전화번호를 받는 법(68만 원)·소개팅 이후 '애프터'를 잡는 법(99만 원)·1 대 1 맞춤 실전 수업(1,180만 원) 등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1,000만 원을 넘는 금액대로 이뤄져 있다.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은 이성과 나눈 메시지 대화를 캡처한 뒤, 상대방 직업·신체적 특징·사진 등을 첨부한 후기를 서로 공유하며 '스터디'를 한다. A씨 역시 자신의 '픽업'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직접 경험담이나 사진을 올린다.
강의 내용은 황당했다. "여자의 거부 반응을 일일이 다 대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운을 뗀 A씨는 "여자가 '(성관계를) 안 할 거야' '하지 마' 이렇게만 말해도 여러분이 좀 쫄 수가(위축될 수가) 있다. 요새 워낙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라면서 "신고 방지법도 알려드릴 건데 일단 생각보다 너무 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A씨가 교재로 활용하는 1,500장 분량 PDF 파일엔 '집으로 부르는 법' '집 거부 반응 (마음) 돌리는 법' 등이 기재돼 있는데 강의 내용과 대동소이했다. 이 카페에서 230만 원어치 강의를 들은 적 있다는 B씨는 "성범죄를 조장하는 것 같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만뒀다"면서 "알려준 대로 따라했다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도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이에 A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강의 영상엔 여성이 정말 싫어하거나 거부할 경우 절대 강제로 하지 말라는 내용도 나온다"고 해명했다. 성범죄를 조장하려는 취지는 전혀 없었다는 취지다. 또 수강생들에게 가르친 '신고 방지법'에 대해선 "합의 하에 관계를 가진 뒤 (성범죄로) 무고를 당했을 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인증 사진도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집으로 들어서는 여성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이나, 속옷 등을 촬영한 뒤 신체적 특징 같은 신상 정보와 함께 올린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행위는 얼굴이나 신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위법 소지가 짙다. 성범죄 사건을 다수 맡아본 이은의 변호사는 "대상자 의사에 반해 웹사이트 등에 올렸다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사진의 경우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부 남성의 그릇된 인식이 반영된 세태라는 분석도 나왔다. 여성학자인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성적 욕구를 풀 수 있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존재로 대상화를 하는 것"이라면서 "많은 여성을 만나는 남성이 그 방법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건 여성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왜곡된 사회라는 뜻"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