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고인민회의(우리의 정기국회 격)를 열어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했다. 다만 예고한 대로 영토조항을 고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못 박았는지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북한 군부는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를 완전히 끊고 영토를 영구적으로 분리하는 '물리적 조치'에 돌입했다. 북한의 조치에 맞서 합동참모본부는 "일방적 현상 변경을 기도하는 북한의 어떠한 행동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7, 8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 일부 내용을 수정보충(개정)했다고 9일 전했다. 주석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없이 당·정·군 간부들만 자리했다.
김 위원장은 1월 '적대적 두 국가론'을 관철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지시했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 '영토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문구'를 삭제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통신은 개헌과 관련해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을 수정하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보고만 보도했다.
김 위원장 대신 총참모부가 전면에 나섰다. 보도문을 통해 "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오전 9시 45분 미군 측에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고도 밝혔다. 올 초부터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철로를 철거하며 차단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이제는 아예 남북을 오가는 길을 끊고 접경지역에 장벽을 쌓겠다고 군 당국이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 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주적인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은 전쟁 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강변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1일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정권 종말'을 경고하고 미군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하며 대북 압박수위를 높이자 빌미로 삼아 맞대응한 셈이다.
북한의 개헌 여부를 놓고 관측은 엇갈린다. ①개헌 작업은 있었지만 미보도 가능성 ②이번 회의에서 다루지 않았을 가능성 ③선 단절·후 헌법 개정 등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영토, 영해, 영공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김정은의 의도처럼 간단하지는 않아 헌법에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며"며 "이 때문에 불만을 가진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하고, 대신 북한과 남한 영토를 더욱 물리적으로 분리·차단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군 보도문에)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분리, 구체적 날짜 등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최고인민회의에서 영토 조항과 관련된 개정이 있었으며, 인민군 총참모부가 첫 조치로 국경 차단에 나선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위기 조성 책임을 명분으로 '선 단절 및 차단'을 통해 북한 주민에 대한 내부 설득력을 확보하고, 최종적으로 헌법 개정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