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오타쿠를 만난다"

입력
2024.10.11 13:00
11면
김해인 에세이 '펀치'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오타쿠의 어원은 일본어로 '당신' 혹은 '댁'이라는 호칭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그저 '당신'에 머물지 않는다. 그럼 오타쿠라는 단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니아'나 '팬'과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데 말이다.

얼마 전 명실상부 오타쿠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나 오타쿠인 거 티나?"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응." 친구는 다시 물었다. "어떤 부분에서?" 이번에는 오랜 고민 끝에 대답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게 있어서 오타쿠란 이러한 정의를 지닌 단어가 되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담기에 하나의 인간으로는 부족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작가가 되고 나서 꼭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그렇게까지 좋아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는 말에 얼추 동의하는 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좋다는 감정 또한 예외는 아니니까. 그러니 김해인 작가의 '펀치'를 읽으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무언가를 꾸준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니. 말도 안 된다.

'펀치'는 누구보다 만화를 사랑하던 사람이 만화편집자가 되어 누구보다 만화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이렇게 요약하자면 다소 추상적인 것 같지만, 이것보다 더 구체적인 요약을 할 자신이 없다. 어쨌든 이렇게 무언가를 오래오래 사랑하고 또 사랑하길 멈추지 않은 사람이 오타쿠가 아닐 리 없다. 그렇다. 김해인 작가는 당연히 오타쿠다. 그리고 오타쿠들은 늘 타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하기를 즐기므로, 이 책은 사실 그가 사랑하는 작품들에 대한 소개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그런 마음은, 그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런데 말이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오타쿠들을 한 번씩 만나 봤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사 주고 싶어 하는 연인이라든가,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라든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전달하려 애쓰는 강사라든가. 생각해 보니 정말 가까이에도 있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매달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게. 오타쿠가 오타쿠를 보고서 오타쿠 같다고 놀라는 일이라니. 참으로 오타쿠 같은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잘도 택해 놓고서 말이다.

송지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