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 소득 증대 방향이 바람직...협동조합 늘려야"

입력
2024.10.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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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실버자원협동조합 설립 10주년
교통사고 '0건'...5년 누적 수익 1억1500만 원
노인 빈곤·고립 문제 해결 모델로 주목

'파지 90원, 신문·책 120원, 깡통 100원, 옷 350원.'

지난 7일 오전 인천 계양구 계산2동 실버자원협동조합 사무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화이트보드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지나 고철의 ㎏당 가격이 적혀 있었다. 수시로 변하는 고물상의 폐품 매입가다. 실버자원협동조합의 조합원은 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이다.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는다. 아침에는 사무실 앞에서 가져온 폐품을 분류한 뒤 저울에 무게를 달고 1톤 화물차에 옮겨 쌓는 일을 함께한다. 폐품을 팔아 번 돈은 성과에 따라 나눠 갖는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폐지 수집 노인 협동조합인 이 조합이 만들어진 건 2014년이다. 한 노인의 교통사고가 계기가 됐다. 조합장인 이준모(58) 인천 해인교회 목사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폐지를 줍고, 작은 유모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물상에 가져다 팔아 하루 7,000~8,000원을 벌던 체구가 작은 어르신이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70대 후반이었던 이 노인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하루 한 끼씩 해결했지만 어느 날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목사는 "8개월이 지나 연락이 닿았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었다고 하더라"며 "이들을 돕는 방법을 찾다가 협동조합을 생각해 냈다"고 돌아봤다. 조합은 조합원들의 회비(연 1만 원)와 기부금,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조합은 중고 화물차부터 할부로 마련했다. 당시 30명이었던 조합원들이 하루에 1, 2시간씩 폐품을 팔러 고물상을 오가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노인들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폐지를 싣고 다녀 사고도 자주 당하는 점도 감안했다. 마트나 학교 등에 요청해 그곳에서 나오는 폐품을 조합원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조합원들에게 장갑과 안전조끼를 나눠주고 경찰에게 교통사고 예방교육도 받도록 했다. 지난 10년간 교통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합 활동이 알려지면서 몰래 사무실에 폐지를 두고 가는 주민들도 생겼다. 조합원 김영례(74)씨는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데, 조합에서 수고를 덜어주고 돈도 더 받아주니 좋다"며 "조합원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중국의 혼합 폐지 수입 중단 조치로 폐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조합원 수가 반 토막 나는 위기도 겪었지만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문제를 해결했다. 조합원들은 2020년부터 지자체가 운영하는 '희망손수레'라는 폐품 수집 사업에 참여하면서 한 달에 18시간을 채우면 18만 원을 받는다. 추가로 폐품을 주으면 한 달에 많게는 90만 원 가까이 버는 경우도 있다. 실제 2020년부터 5년간 조합 수익은 총 1억1,500만 원에 달한다.

내년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이런 협동조합은 폐지 수집 노인의 빈곤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은 적게는 1만4,831명(올해 지자체 전수조사)에서 많게는 4만1,876명(지난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실태조사)까지로 추정된다. 지자체 조사 결과 평균 연령은 78.1세였고, 평균 소득은 76만6,000원에 불과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율은 32.2%에 그쳤다. 생계급여 수급자는 신청할 수 없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3명은 수급자(수급률 28.4%)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노인 일자리와의 연계를 통해 폐지 줍는 노인의 소득을 늘려줘 자연스럽게 폐지 줍기를 그만두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이 목사의 생각은 다르다. 이 목사는 "폐지 수집 노인을 줄이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실질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도 월 30시간만 채우면 다시 거리로 나서 폐지를 줍는다"며 "협동조합 같은 시장형 사업을 늘려 소득을 증대시켜주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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