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를 한참 밑돈 3분기(7~9월) 9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삼성전자 위기론이 수치로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안팎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이 회사 반도체 사업(DS·디바이스 솔루션)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내 위기론을 직접 꺼냈다.
위기론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경쟁자를 압도하는 사업 영역이 갈수록 준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발표한 '2023 주요 상품·서비스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분야 시장 점유율 1위를 애플에 내줬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각광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 수준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도 대만 TSMC가 올해 2분기 62.3%의 시장 점유율로 1위를 굳힌 반면 삼성전자는 11.5%로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TV·생활가전 사업도 LG전자는 물론, 중국 업체도 삼성을 바짝 뒤쫓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8년에는 중국 디스플레이업체 BOE가 삼성디스플레이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경고가 쌓여 어닝쇼크가 왔고 연일 신저가 기록을 써 온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6만300원에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약해진 배경으로 '전략의 부재'를 꼽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래를 내다보고 혁신 기술을 내놔야 하는데 AI 반도체처럼 한두 발 늦는 일이 반복되면서 위기가 쌓인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앞날을 살피는 전략의 부재 상태"라고 진단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미래전략실을 없앴고 이후 그룹의 장기적 계획도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 부회장의 사과문을 예로 들었다. 그는 "어닝쇼크가 왔다고 수장이 사과부터 해서 시장과 투자자가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리스크 관리도 중요한 역량인데 그런 면에서 위기에 대안과 비전을 마련하고 시장과 소통하려는 (삼성전자의)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관료화와 폐쇄적 소통 체계가 문제로 꼽힌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설비 투자는 물론 기술 연구 관련 의사 결정도 늦어지며 시장을 이끄는 초격차 기술이 나오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전 부회장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이날 사과문에 세 공약을 밝혔다. ①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회복 ②철저한 미래 준비 ③조직 문화와 근무 방법 쇄신이다. 그는 "단기적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전자가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정확한 판단 △신속한 결단 △과감한 투자로 업계를 이끌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삼성전자가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AI 반도체를 잘 준비하면 반등의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