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다. 흑백요리사는 소위 '스타 셰프'인 '백수저' 20명에게 재야의 요리 고수 '흑수저' 80명이 도전장을 내미는 형식의 요리 서바이벌 쇼다. 쇼 속 요리의 면면이며 판정에 대한 의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넘쳐나는 걸 보면 '흑백요리사'가 현재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영상 콘텐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음식평론가로서 그런 요리 서바이벌 쇼의 인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덤덤하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장르가 태동해 엄청난 인기를 누린 뒤 쇠락하는 과정까지 쭉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요리 서바이벌 쇼는 일단 접하면 한동안 헤어나기 어렵다. 요리는 좁은 공간에서 불과 칼을 다루기에 박진감이 넘친다. 따라서 스포츠 같은 면이 풍부한 가운데, 음식이라는 반드시 먹고 판정해야 하는 결과물까지 나온다.
그렇기에 서바이벌 쇼에 한번 맛을 들이면 다른 요리 콘텐츠는 시시해진다. 청중은 갈구하고 방송사는 부응해 콘텐츠를 계속 입에 넣어준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 이 재미도 언젠가는 사그라든다. 요리 서바이벌 쇼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등장해 200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후 갈수록 높은 자극의 선정적인 콘텐츠를 내놓으며 절정에 이른 뒤 인기는 사그라들었다.
이 모든 요리 서바이벌 쇼의 싹이 일본에서 텄대도 놀랄 이는 없을 것 같다. 음식 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요리왕 비룡', '따끈따끈 베이커리' 등 만화 형식을 빌린 요리 서바이벌이 장르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이런 여건 속에서 1993년 10월 10일, 민영 방송 후지TV에서 '요리의 철인(料理の鉄人)'을 방영한다.
'요리의 철인'은 무협적 분위기를 다분히 풍겼다. 배우 가가 다케시가 주최자 역할을 맡아 휘하에 일식, 중식,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식의 세 요리 철인을 거느린다. 철인들은 돌아가며 같은 요리 장르의 도전자와 격돌한다. 대결은 특별히 고안된 대결용 주방에서 펼쳐지고, 철인과 도전자 모두 요리사 두 명과 함께 한 시간 이내에 서너 가지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요리의 철인'의 백미는 대결 직전 공개해 극적인 재미를 더하는 요리의 주재료였다.
최초의 음식평론가 브리야사바랭(1755~1826)의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요리의 철인'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999년 9월 24일까지 7시즌 동안 295화의 쇼를 선보였다. 전부 7명의 요리 철인이 등장해 그야말로 '진검 승부'를 보인 '요리의 철인'은, 스포츠적인 면 외에도 이론과 학문적 요소 또한 즐기는 맛이 있었다.
일식 철인인 미치바 로쿠사부로는 1시간의 제한 시간 속에서도 요리 시작 전, 반드시 붓글씨로 전체 메뉴를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요리 가짓수가 고정되고 디저트까지 포함시켜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이 강화되면서 흥미로운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삼을 활용한 중식 디저트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말하자면 대가들이 익숙한 재료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음식을 만드는, 극단의 창의성을 즐길 수 있었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었던 '요리의 철인'은 미국에 진출하면서 요리 방송계의 지각 변동을 이끌어낸다. 1999년 요리 전문 케이블 방송국인 푸드네트워크에서 정식 수입, 영어 더빙을 입혀 내보내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마치 1970년대 무협 영화를 방불케 하는 성우들의 연기가 나름의 매력을 더해준 것도 인기 비결이었다.
'요리의 철인'이 공전의 인기를 보여주자, 푸드네트워크는 라이선스를 사들여 자신들의 요리 서바이벌 쇼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2004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Iron Chef America)'를 출범시킨다. 마리오 바탈리(이탈리안)와 바비 플레이(라틴 퓨전)에 일본 쇼의 철인이었던 모리모토 마사하루(일식)가 합류해 아이언 셰프 3인방을 이루었다.
'아이언 셰프' 이전까지 미국의 요리 영상 콘텐츠는 소위 '에듀테인먼트'적 기질이 강했다. 1990년대 말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이미 올리버의 '벌거벗은 셰프'처럼 요리의 지식과 기술을 라이프스타일에 담아 보여주는 쇼가 거의 전부였다. 이처럼 풍요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요리 쇼 세계에 흰 조리복 차림에 식칼을 움켜쥔 셰프들이 등장하니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요리의 철인'을 재현한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는 전 미국을 과장 하나 없이 광란의 도가니로 끌어넣었다. 미국인들의 스포츠 사랑에 요리의 격렬함이 접목되자 전국이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열풍에 휩싸였다. 푸드네트워크는 급성장했고 요리 서바이벌이 미국인들의 생활 양식으로 파고들었다. 미국 특유의 뒷마당 파티 문화가 요리 서바이벌과 만나, 바비큐나 햄버거 등의 조리를 놓고 일상에서 대결하는 놀이 문화가 싹튼 것이다.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의 인기에 후발 주자들도 등장했다. 그 가운데 2006년 출범한 브라보TV의 '톱 셰프(Top Chef)'는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며 살아남았다. 일본의 쇼를 그대로 옮겨와 대결과 오락성을 적극 강조했던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와 달리, '톱 셰프'는 좀 더 진중하게 요리에 접근했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차려 독립하려는 20·30대 요리사를 10명가량 뽑은 뒤 요리 경연을 통해 매주 한 명씩 탈락시켰다.
백미는 요리사가 8명만 남았을 때 두 편으로 갈라 팝업 레스토랑을 차려 승부를 가리는 '레스토랑 워즈(Restaurant Wars)'였다. '톱 셰프'도 최후의 요리사 2인이 1대 1 대결을 통해 승자를 가렸다. 이길 경우 레스토랑 개업을 위한 지원금(10만 달러부터 시작)을 지급했다. 현재 '흑백요리사'에도 출연 중인 한국계 셰프 에드워드 리가 시즌 9(2011~2012)에 출연해 비빔밥으로 좋은 평을 받은 바 있다.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와 '톱 셰프'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10년가량 전성기를 누렸다. 이들 요리 서바이벌 쇼의 인기가 음식 영상 콘텐츠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는 영국,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쇼를 제작하는 등 막대한 인기를 끌었지만, 에듀테인먼트 형식의 음식 영상 콘텐츠를 거의 절멸시키다시피 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에 충실해 푸드네트워크는 요리 서바이벌 쇼 비중을 차츰 높였다. 대표적인 쇼가 2009년 출범한 '찹드(Chopped)'였다. 세 명의 요리사가 비밀 재료 바구니를 받아 전채, 주요리, 디저트의 세 라운드를 요리했다. 바구니에는 꼭 하나씩 다른 재료와 같이 쓰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을 포함시켜 오락적 요소를 강화시킨 게 특징이었다. 이를테면 장어와 양파, 그리고 풍선껌을 한데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찹드'가 성공하자 푸드네트워크는 오락성을 강조한 서바이벌 쇼를 계속 찍어냈고, 기성 요리쇼들의 입지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애매해졌다. 결국 푸드네트워크는 '쿠킹 채널'이라는 별도의 채널을 설립해 기존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들을 옮겨 담았다. 그런 가운데 요리 서바이벌 쇼의 인기는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너무 오래 우려먹어 서바이벌 자체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한편, 실력을 보여줄 요리사들의 풀도 이제 옅어졌다.
'톱 셰프'의 사정도 비슷하다.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비하면 요리의 기술과 이론, 요리사의 창의력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시즌 10을 넘어가자 출연진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서바이벌 쇼가 흔해지며 경쟁자 수준이 떨어지자 이들의 대우도 예전만 못하다. 우승을 하더라도 투자자를 찾아 레스토랑을 열기가 어려워졌다. 한동안 즐겁고 이목도 집중시켰지만, 서바이벌 쇼는 궁극적으로 음식과 요리의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