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전선 상태 엉망" 경고 무시하더니... 부천 호텔 화재도 '인재'였다

입력
2024.10.08 16:51
에어컨 노후 전선 교체 대신 재사용 
수리기사 수차례 지적해도 호텔은 무시 
'도어클로저' 미설치 방화문 열려 연기 확산 
 화재경보기 울렸지만 꺼 골든타임 2분 지연 
 경찰, 호텔 소유주·관계자 4명 구속영장 신청

투숙객 7명이 숨진 경기 부천 호텔 화재는 에어컨의 낡은 전선 방치, 방화문에 달려 있어야 할 자동문닫힘 장치 미설치 등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경찰은 에어매트가 뒤집혀 논란을 일으킨 소방당국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부천 호텔 코보스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8일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건축물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건물주 A(66)씨, 호텔 운영자 B(42)씨와 C(45·A씨의 딸)씨, 호텔 매니저 D(36)씨 등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화재는 불이 시작된 810호 객실의 벽걸이형 에어컨 본체와 실외기를 연결하는 전선이 부식돼 전기적 발열 현상에서 비롯됐다. 이 열이 주변 가연물에 불이 나게 한 원인이 됐다는 게 경찰 결론이다.

특히 허술한 에어컨 관리가 사고를 키운 결정적 원인이었다. 2004년 준공한 호텔을 2017년 인수한 A씨는 이듬해(2018년) 5월 전 객실의 에어컨을 교체했다. 14년 만에 냉방기를 전면 교체했지만, 영업에 지장을 줄 것을 우려해 전체 배선 교체 대신 기존의 노후 전선을 계속 사용했다. 당시 에어컨 설치 업자는 기존 에어컨 전선 길이가 짧아 작업이 어려워지자 기존 전선에 새로운 전선을 이은 뒤 절연 테이프로만 감았고, 그 상태로 계속 사용해왔다. 에어컨 전선은 통선 사용이 원칙이고, 불가피하게 두 전선을 이을 경우(결선) 열을 일으키는 저항을 최소화할 각종 안전 조치를 해야 하는 전기설비기술기준을 어긴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에어컨 정비 기사가 '2018년 말부터 2020년까지 여러 차례, 올해도 배선 상태가 엉망이라고 호텔 측에 얘기했다'고 한다"며 "총 63개 객실 가운데 15개 객실은 맨눈으로 볼 때도 20년 된 전선의 상태가 부실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자동문닫힘장치(도어 클로저) 미설치도 화를 키웠다. 각 객실문은 60분간 불에 버틸 수 있는 ‘갑종 방화문’이었지만, 불이 난 810호의 객실문은 화재 당시 활짝 열려 있어 삽시간에 유독가스가 확산했다. 안전규정상 방화문은 항상 닫혀 있거나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닫혀야 한다. 환기를 이유로 복도의 비상구 방화문을 '생수병 묶음'으로 고정해 열어둔 것도 피해를 키웠다.

'에어매트 논란' 소방당국 책임 묻기 어려워

대응도 허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발생 직후 화재경보기가 울렸으나, 호텔 매니저 D씨가 경보기를 껐고, 8층으로 올라가 화재를 확인한 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화재경보기를 재작동시켰다"며 "투숙객의 피난을 2분 24초 지연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망자 7명 가운데 7∼8층 투숙객 5명은 화재경보기가 꺼지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다"고 했다.

D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려 투숙객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비상벨이 울리면 일단 끄고 실제 화재인지 확인 후 다시 켜는 것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모든 객실에 있어야 하는 간이완강기도 63개 객실 가운데 절반가량인 31개 객실에는 없었고, 9개 객실의 완강기 로프 길이는 각 층 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등 피난 기구 관리도 소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논란이 됐던 구조용 에어매트는 문제없다고 봤다. 소방당국이 1층에 설치한 에어매트로 남녀 투숙객 2명이 뛰어내렸으나 뒤집어져 숨졌다. 경찰은 “에어매트를 설치한 지점인 807호 바로 아래는 호텔 주차장 진입로로, 7도의 경사도가 있어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려웠고, 설치 매뉴얼도 없어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족들 "보강 수사해야"... 9일 추모제 개최

지난달 4일 결성된 부천화재참사유가족모임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대로 수사해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를 바랐지만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며 경찰 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 유족들은 "소방이 왜 고가사다리차를 늦게 운용했고, 화재 신고가 들어온 객실을 우선 수색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보강 수사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유가족모임은 화재 발생 49일째가 되는 9일 오후 부천시청 앞에서 시민추모제 '다시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를 연다. 송근석 유가족모임 공동대표는 "참사 원인을 밝히고 소방과 경찰의 대응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규명해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게 유가족 뜻"이라며 "추모제 이후 후속 활동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이환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