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비서실장' 사임에 예산안 논란까지… 영국 스타머 총리 고전

입력
2024.10.0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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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 원 논란' 그레이 비서실장 사임
총리실 출범 석 달 만에 인사 개편 필요
'복지 축소·부자 증세' 예산안도 재검토

지난 7월 취임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집권 초기부터 격랑에 휩싸였다. '문고리 권력' 논란을 포함한 각종 내분 끝에 내각 최고위 인사인 비서실장이 사임했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내년도 정부 재정 계획도 노동·산업계 양측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총선 전후 정권 교체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70%대에 달했던 지지율은 최근 20%대로 폭락했다.

'파티 게이트' 조사로 일약 스타됐지만…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모건 맥스위니 총리실 정치 전략 책임자를 차기 비서실장으로 낙점했다고 이날 밝혔다. 앞서 수 그레이 비서실장이 이날 사임하자 후임 인사를 서두른 것이다. 이로써 지난 7월 5일 출범한 스타머 내각은 불과 3개월 만에 대대적인 후속 인사 개편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레이 사임의 도화선은 '문고리 권력 논란'이었다. 공직자 윤리 담당 조사를 총괄하는 정부 공무원이었던 그레이는 2022년 보수당 '파티 게이트'를 조사하며 노동당 눈에 들었다.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간인 2021, 2022년 내각 인사들과 파티를 즐긴 사실을 철저히 밝힌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이후 그레이는 지난 7월 스타머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러나 그레이는 곧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총리실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어떤 보고가 스타머 총리에게 전달될지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특히 지난 7월 선거 운동을 이끌며 '노동당 집권 1등 공신'으로 평가됐던 맥스위니 측 인사들이 그레이를 비난하는 제보를 영국 언론에 흘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FT는 "정권 내부에 험악한 분위기가 돌았다"고 평가했다.

사임 결정에 불을 붙인 건 고액 연봉 논란이었다. 스타머 총리가 그레이 연봉을 17만 파운드(약 3억 원)로 인상했다는 사실이 지난달 알려지며 총리실 내 불만이 폭발했다. 스타머 총리 연봉보다도 3,000파운드(약 530만 원) 많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그레이 실장은 이날 직을 내려놓고 총리 특사 직을 맡게 됐다.

FT는 "스타머 총리가 마침내 비틀거렸던 정부를 장악하기로 결심한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은 총리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태를 방관했는지 궁금해한다"고 지적했다.

"14년 만에 집권한 노동당, 고군분투"

이로써 노동당 내분은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스타머 내각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이달 30일 발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머 정부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고강도 재정 개혁을 예고하고 있으며, 해당 예산안에는 '복지 예산 축소'와 '부자 증세' 계획이 동시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비판을 한번에 받는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달 지지율이 24%까지 곤두박질치자 스타머 정부도 결국 예산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방침을 세웠다. 블룸버그통신은 "예산안 확정을 불과 3주 앞두고 정부는 증세 계획 재검토 필요성을 인정했다"며 "이 같은 혼란은 14년 만에 정권을 잡은 스타머 총리와 노동당이 야당에서 정부로 전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김현종 기자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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