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 매수에 쓸 돈 중 빚 1조 원 늘었다...승자의 저주 가능성 더 커졌다

입력
2024.10.07 19:00
16면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자기 자금 정정 공시
자기자금 1조 5000억 원→5000억 원 줄여
이번 주 영풍정밀·고려아연 매수가 올릴 듯
영풍·MBK, "콜옵션 가격 고정돼"


고려아연은 7일 자사주 매입을 위해 투입한다고 알린 자기자금 1조5,000억 원 중 1조 원은 차입금이라고 정정했다. 이에 따라 자기자금은 기존 1조5,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줄었는데 최윤범 회장 측이 영풍·MBK파트너스(MBK)와 경영권 다툼에서 이기더라도 천문학적 차입금으로 인한 '승자의 저주'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 회장 측은 이번 주 영풍정밀·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더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고려아연은 2일 자기주식 공개 매수를 위해 마련한 자금이 자기자금 1조5,000억 원, 차입금 1조1,635억 원이라고 신고했다. 고려아연은 같은 날 자사주 공개 매수 결정 사실 공지에서 메리츠증권을 인수자로 발행한 무보증 사모사채(회사채) 1조 원을 자기자금으로 분류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날(7일) 차입금으로 다시 분류한 것이다. 해당 사모사채의 금리는 6.5%이며 만기는 1년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측이 설사 공개매수 가격을 더 올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해도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이 이번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자금 중 자기 자금은 5,000억 원이고 나머지 2조 원 이상은 빌린 돈이다. 고려아연이 차입금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만 약 1,8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 회장 측이 앞서 밝힌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자금 3조 1,000억 원(베인캐피탈 자금 4,300억 원 포함) 중 자기 자금 비율은 16.1%에 불과하다.



최 회장 측 제리코파트너스, 가격 인상 아직 결정 못해


영풍·MBK파트너스(MBK)가 4일 고려아연·영풍정밀 공개 매수 가격을 올린 것에 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영풍·MBK가 같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매수 물량, 세금 조건 등을 고려하면 고려아연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라선 만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최 회장 측이 다시 가격 인상 등으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최 회장과 그의 작은 아버지인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제리코)는 이날 오전 이사회를 소집했다. 제리코는 2일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는 영풍정밀에 대해 지분 393만7,500주(지분율 25%)를 주당 3만 원에 대항 공개매수한다고 알렸다. 이에 영풍·MBK 측도 4일 공개매수가를 3만 원으로 올렸다.

최 회장 일가는 이번 이사회를 통해 영풍정밀 가격 인상을 포함해 향후 대응 전략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최 회장 측은 가격 인상 등에 대해 최종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결국 이번에도 영풍정밀에 이어 고려아연도 공개매수가를 높일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된다. 시점은 영풍·MBK의 고려아연·영풍정밀 공개매수 종료일인 14일 이전으로 보인다.

영풍정밀은 이날 이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하 듯 주가가 9% 가까이 올랐다. 장 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15.23%까지 오른 3만6,700원에 거래됐지만 최종 8.95% 상승한 3만4,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고려아연은 0.52% 오른 78만 원, 영풍은 0.29% 상승한 34만6,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한편 MBK는 또 이날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영풍과의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 행사 가격이 공개매수가 인상에 따라 낮아진다는 일부 보도를 두고 '애초 특정 수치로 고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영풍과 MBK는 9월 공개매수를 시작하며 양측이 콜옵션 약정을 맺었다고 알렸지만 행사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콜옵션 행사가가 공개매수 가격을 고려해 조정하도록 설정돼 영풍에 불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MBK는 이에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콜옵션 행사 가격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합의된 가격으로 고정돼 있다"고 전했다.



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