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한창이다. 아연 제조와 관련해 서구권과 각국 정부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풍과 손잡은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미국 중심의 원자재 공급망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의 울산 소재 온산제련소는 원자재 공급망을 구축하는 전략의 핵심 시설이라는 점에서 M&A 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M&A는 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하거나 인수하기 위해 내리는 전략적 결정이다. M&A를 통해 기업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도 있지만 시장에 폐해를 주기도 한다. 그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며 현대적 의미를 새겨 보기로 한다.
M&A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 이후 기업들은 시장 확장과 생산 효율성 증대를 위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하기 시작했다. 철강, 광업, 석유, 담배 같은 산업에서 대규모 합병이 일어났는데, 대기업이 독점 지위를 점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M&A가 주로 이뤄졌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경쟁을 없애며 주요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M&A 추진에 강력한 동력이었다. M&A 제1기(1890∼1905)에서 미국 M&A는 한 해 1,000건이 넘는 등 선풍적 인기몰이를 했다. 미국 산업계의 독점화 경향은 힘깨나 쓰는 기업이 힘없는 기업을 M&A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동일산업 내의 수평적 결합으로 거대한 기업이 등장한 것이 특징인 시기다. 대량생산 기술 발전과 남북전쟁 후 전국 철도망의 건설로 일부 지역에 군림하던 기업들이 급속히 미국 전역으로 영업 기반을 넓혀 기업들의 독점 현상이 일어났다. 1914년 동일산업 내의 합병을 금하는 ‘클레이턴법’의 제정으로 제1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1890년 제정된 셔먼법, 1914년의 클레이턴법, 연방거래위원회법 등 3개 법령과 판례로 구성돼 있다. 석유왕 존 록펠러가 1870년 설립한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철도업체와의 결합으로 석유 수송망을 장악했다. 이후 차별적 운송 요금 적용으로 경쟁 업체를 차례차례 무너뜨렸다. 경쟁 업체들이 1906년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이후 장기간에 걸친 공방전이 벌어졌다. 마침내 미국 대법원은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을 30개로 분할할 것을 명령했다. 스탠더드 오일의 강제 분할 이후 사회적으로 독점규제 분위기가 고조됐다. 같은 해 미국 담배 시장의 95%를 독점한 아메리칸 토바코도 16개 회사로 분리됐다.
1차 세계대전 후 1925년부터 제2기(1925∼1929) M&A 시기가 시작된다. 이 기간에는 수평적 결합은 금지되고 원료에서 제품까지 일괄생산을 확립하는 수직적 결합이 증가했다. ‘클레이턴법’은 주식 취득에 의한 합병을 금했기 때문에 자산 취득에 의한 합병이 주를 이뤘다. 그 바람에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대형 자동차회사는 용광로까지 소유하는 과점현상이 발생했다. 1929년 뉴욕증시의 대폭락과 함께 대공황이 발생하고 장기간 기업 활동은 정체했다. 대공황의 주범은 주식시장의 과열이고 그 배경에 수직적 결합을 허용한 기업의 M&A와 자산취득이 있었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 결과 제3기(1950∼1969) M&A 물결은 독점이 자유경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론으로 시작했다. 1950년 독점금지를 한층 강화하는 내용으로 ‘클레이턴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동일산업 내에서는 수평적일 뿐만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M&A를 할 수 없게 됐다. 기업들은 그 돌파구로서 타 업종 M&A에 나서게 됐다. 그 결과 복합합병기업(Conglomerate)이란 새로운 대기업이 탄생하게 됐다. 복합기업 합병은 서로 관련 없는 사업 활동을 영위하는 기업 간의 합병을 의미한다. 대기업 합병은 주가 메커니즘을 이용해 유리한 기업을 매수함으로써 크게 성장했다. 이때는 적대적 공개매수(TOB〮Take Over Bid)가 증가했다. 적대적 TOB는 특정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만큼 시중 가격보다 높은 값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단기간에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확실한 기업매수 방식이다. TOB의 목적은 M&A 도모나 경영권 안정, 상장폐지, 지주사 요건충족 등이 있다. 인수합병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1960년대에는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많은 기업이 다른 산업 분야의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주식 교환을 통한 합병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68년에는 ‘윌리엄법’이 제정돼 적대적 TOB에 제동을 걸면서 제3단계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TOB 사례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이다. 현대그룹은 2003년 하반기부터 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 KCC(옛 금강고려화학)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KCC는 2004년 2월 12일 공시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57만1,500주(8.01%)를 주당 7만 원에 공개 매수한다고 밝혔다. 두 기업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당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10배가량 폭등했다.
제4기(1975∼1982) M&A 시기에는 타 업종을 닥치는 대로 M&A하던 대기업들의 군살 빼기 작업에 들어갔다. 사업 재편으로 채산성이 없는 부문이나 성장성이 낮은 부문을 과감하게 팔고 주력 업종에 전념했다. 경쟁력 없는 부문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매각 자금으로 주력 부문을 보강하기 위해 또 다른 기업사냥에 나섰다. 이 시기에는 모든 업종에서 사업 재편이 일어났다. 기업매수와 부분 매각이 활발하게 일어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150개의 사업 부문으로 분리되고 부문 매각을 단행했다.
제5기(1984∼현재) M&A 시기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는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everaged Buyouts·LBO)과 적대적 인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업 인수를 위한 대규모 자금조달과 복잡한 금융 기술이 도입됐다. 21세기에는 글로벌화 추세로 주목받게 된다. 달러의 엔화에 대한 환율이 약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일본 기업들은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겼다. 1993년 유럽공동체(EC) 통합을 전후해 미국과 일본 기업은 유럽진출 수단으로 M&A를 활용했다. 글로벌화 추세와 맞물려 더욱 활발해졌다. 기술 혁신과 디지털화의 영향으로 인터넷, 소프트웨어, 통신 분야에서 많은 인수합병이 일어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이 중요해지면서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 간의 합병이 늘어났다.
기업이 M&A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해 단일한 답변은 없다. 일반적인 이유는 새로운 시장으로의 확장, 새로운 기술 또는 전문성 획득, 경쟁 감소 또는 시너지 활용이 포함된다. 기업들은 M&A를 성장을 위한 빠른 경로로 본다. 엑손(Exxon)과 모빌(Mobil)의 합병, 구글의 유튜브 인수,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 등 주목할 만한 거래가 많이 있다. 모든 M&A가 우호적이지 않고 일부는 적대적이다. 적대적 M&A에서 인수 회사는 대상 회사 경영진 의사에 반해 주주에게 입찰을 제안한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문제와의 관계에서 지배구조와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격적인 M&A를 진행한다고 한다. 대다수 언론은 이와 달리 MBK파트너스의 움직임을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로 본다. 이제 이 문제는 정치 이슈로 빠르게 비화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 등 울산지역 정치권과 상공계에서도 고려아연의 백기사가 되겠다며 주식 매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적대적 M&A가 단기 수익에만 집착한 채 우리 사회와 경제에 해를 끼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제대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