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당국이 관리하는 비숙련취업(E-9) 비자를 취득해 입국한 외국인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5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이 가운데 연간 수천 명을 적발해 추방하고 있지만, 검거 실적이 미진하다 보니 불법체류 인원은 매년 순증하는 추세다. 우리 경제에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외국인 취업 비자 및 취업자 관리 제도를 속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E-9 비자로 입국한 뒤 불법체류자가 된 외국인 규모는 최근 3년간 5만 명대 중반으로 파악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2년 말 기준 5만5,171명 △2023년 말 5만6,328명 △올해 8월 말 5만4,898명이다. 올해 8월 기준 성별로는 남성(4만8,390명)이 여성보다 7.4배 많았고, 연령별로는 산업현장 수요가 많은 30대가 절반가량(48.0%)으로 가장 많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E-9 비자를 얻은 외국인 노동자의 연간 입국자 수는 △2022년 8만8,012명 △2023년 10만148명 △올해 1~9월 5만8,319명이다.
법무부는 매년 E-9 비자 불법체류자 수천 명을 검거해 강제 추방하고 있다. 2022년 1,261명이었던 강제추방 인원은 2023년 3,460명, 올해 1~8월 2,726명으로 늘었다. 다만 연도별 불법체류자 수와 비교하면 추방 비율은 2.3~6.1% 수준에 그쳤다. 이렇다 보니 연간 불법체류 증감 인원과 강제추방 인원을 비교하면 2023년에는 4,617명, 올해 8월까진 1,296명의 불법체류자가 새로 생긴 셈이다.
E-9 비자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연계된 제도다. 조선업, 건설업, 제조업 등 내국인 근로자를 찾기 어려운 기업과 외국인 근로자를 연결해준다. 고용부가 산업별 허가 인원을 설정하면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16개국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력 리스트를 작성한다. 한국어 능력과 업무 경험, 기능 평가 등을 주로 심사한다. 고용허가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채용을 원하는 기업과 일대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입국할 수 있다. 근무지나 직장을 변경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E-9 비자 소지자가 불법체류로 관리망을 벗어나는 일이 빈발하다 보니 일각에선 E-9 비자가 '불법체류자 입국 통로'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로 취업했다가 추석 연휴 기간 숙소를 무단이탈한 끝에 지난 4일 부산에서 검거된 필리핀 여성 2명도 E-9 비자로 입국했다가 추방 대상이 된 사례다.
이런 난맥상은 입국자 관리 부실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이 많다. 외국인 노동자가 정해진 거주지에 정상적으로 체류하고 있는지, 직장을 이탈하거나 출근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관리할 책임이 이들을 채용한 사업주에게 맡겨져 있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사업주가 신고하지 않을 경우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 반대로 사업주가 임금을 떼먹거나 온전한 숙소를 제공하지 않아도 외국인 노동자가 피해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고용 당국은 파악하기 힘들다.
노동계에선 고용허가제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해진 직장 이외에는 이직이 불가능하다 보니 더 좋은 조건과 급여를 찾아 불법체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6일 서울역 일대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미얀마 출신 윈 저소는 "친구 세 명이 돼지농장에서 일하게 됐는데 사장님이 도축 일을 시키니까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그만두고 싶다 해도 그만두지 못하게 해서 결국 도망쳐 불법체류자로 생활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건태 의원은 "산업현장에서 E-9 비자 인력의 역할이 크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인력 수요 분석과 사후 관리 소홀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고용 당국은 기존 입국자들의 근로환경 점검과 사후관리 체계 마련에 집중하고, 법무부는 한 자릿수인 불법체류자 검거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