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매업체인 소더비의 재정 문제가 심상치 않다. 상반기 수익 감소에 대한 보고서가 유출된 데 이어 하도급 업체에 대한 대금 체납 소문까지 들린다. 구조조정 소식이 사실이건 아니건 경영난은 분명해 보인다. 280년 역사의 글로벌 경매업체이자, 미술계의 쌍두마차 중 하나가 그 명성에 큰 상처가 난 것이다.
한 달 전 아부다비 기반의 국부펀드 및 투자회사 ADQ가 지분 인수를 조건으로 소더비와 10억 달러 딜을 추진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자금 상황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서, 이 회사가 러시아 신흥 재벌과 벌이는 소송의 뒷얘기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더비와 미술품 투자를 둘러싼 치부로 기록될 소송전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12월, 중남미 카리브해의 세인트바트섬 호텔에서 오찬을 즐기던 러시아 재벌 리볼로프레프는 자신이 구입한 모딜리아니 작품의 터무니없는 원가를 알게 된다. 평소 신뢰하던 스위스 출신의 '아트 어드바이저'인 부비에를 통해 1억1,180만 달러를 지불한 작품의 실제 판매가격이 9,350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내용이었다.
리볼로프레프는 부비에가 자신을 속이고 10억 달러 이상 수익을 챙겼다고 고소했고, 부비에도 강하게 맞대응했다. '아트 딜러로 커미션을 붙여서 파는 것은 당연하다'는 부비에의 반론에, 리볼로프레프는 "부비에가 가상의 경쟁자를 들먹이며, 가격을 부풀렸다"고 폭로했다. 부비에의 뻔뻔함에 분노한 러시아 재벌은 소더비에도 화살을 돌렸다. 경매에 나온 작품의 가치 추정을 둘러싸고 소더비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증거로 소더비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1월 마무리된 이 소송은 소더비의 승리로 끝났다. "소더비 경매소가 많은 작품이 거래되도록 도왔을 뿐, 고객을 속였다는 확실한 정황은 없다"는 결론이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일반인들은 리볼로프레프가 거액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작품을 구매할 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작품을 구매 가격보다 서너 배 비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비에와 소더비의 농간으로 1,700억 원에 샀다던 '살바토르 문디'를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6,000억 원에 사우디 왕세자에게 매각했다.
2014년 시작해 10년 넘게 끈 이 법정 공방은 위기에 빠진 소더비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까스로 명성을 지키고는 있지만, 언제라도 조그만 추문이 터지면 무너질 수 있는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보인다. 실제로 2011년 미국 유수의 갤러리 노들러는 뉴욕 퀸즈의 중국인 작가가 그린 모작들을 판매한 뒤, 165년 동안 힘들게 쌓은 역사를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