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받은 이메일 한통은 안무가 해니의 삶을 크게 바꿨다. 메일 제목은 간단하지만 강렬했다. 바로 '어셔(Usher)'였다. 어셔가 진행하는 투어에 해니를 안무가로 참여시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운명과 강한 의지가 맞물리며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있게 됐고, 해니에게는 '한국인 안무가 최초로 어셔와 협업'이라는 의미 있는 결실이 생겼다.
해니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셔와의 협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안무가이자 댄서·크리에이티브 디렉터·커뮤니티 오거나이저다. 어린 나이에 발레를 접했으며 다양한 춤을 트레이닝, 역량을 쌓았다. 해니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어셔를 비롯해 잭슨 왕·블랙레이블·큐브 엔터테인먼트·KOZ 엔터테인먼트와 작업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으로 창의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니와 어셔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해니는 "10년째 우리 팀 매그놀리아와 함께 작업해오며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굿 타임즈(GOOD TIMES)'라는 행사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퍼포먼스는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았고, 마블러스라는 댄서에게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얼마 지나 그는 이메일을 받게 됐다. 제목은 '어셔'였다. "어셔가 진행하는 투어에 저를 안무가로 참여시키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사실 처음 투어팀에서 이메일을 받았을 때, 제가 LA 출신의 댄서·안무가라고 생각해서 연락을 주셨던 거였어요. 제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걸 몰랐던 데다 원했던 날짜도 너무 가까워서, 첫 답변은 '다음에 다시 시도해보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품고 있던 해니는 몇 주 후 다시 연락을 받게 됐다. 그는 "날짜가 미뤄져서 가능하면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저는 스튜디오를 오픈하게 되어 행사 중이었고, 그 다음엔 3일 후에 다른 아티스트와 뮤직비디오 작업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딱 그 비어있는 3일 동안 저를 원하셨다. '이건 꼭 해야겠다' 싶어서 고민 없이 바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해니는 그렇게 어셔의 손을 잡게 됐다.
해니는 잔뜩 긴장한 채 애틀란타로 향했다. 잠들지 못한 채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내게 맡길까'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막상 애틀란타에서 마주한 경험은 해니에게 강렬한 즐거움을 안겼다. 그는 "최근 나온 '마르지엘라(Margiela)'라는 곡은 전에 없었던 무대였다. 정말 처음부터 새롭게 무대를 만들어야 했다. 재미있게도 무대가 움직이는 형태로 구성돼 있어서, 이를 어떻게 응용할지가 우리의 미션이었다. '해니가 원하는 걸 다 해봐'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연습실에서 안무를 창작하는 과정 또한 너무 자연스러웠다. 바로 그 자리에서 댄서들과 음악을 틀고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루브를 따라 한동작 한동작 만들어나갔다"고 이야기했다.
'유 메이크 미 워너(You Make Me Wanna)'라는 곡은 투어 팀이 해니를 찾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해니는 "의자를 활용한 다양한 안무를 만들어 왔는데, 저희 팀의 미국 공연에서도 의자가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투어 퍼포먼스를 생각할 때 저를 찾게 된 거다. 어셔의 음악에 의자를 활용해 새로운 느낌의 안무를 만드는 건 정말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좋아하다보니 중간 중간 어려운 동작을 넣어놓았는데, 댄서들이 제가 생각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도와줬다"고 말했다. 어셔의 태도 또한 해니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니는 "함께 춤추는 파트가 아니었는데도 어셔가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는 일에 진심을 다하더라. '모든 무대에 진심인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고 배웠다"고 밝혔다.
해니는 어셔와의 협업을 '영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내가 태어난 해인 1994년에 데뷔해 지금까지도 진심을 다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안무가로 참여했다는 것이 짧은 파트지만 여전히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경험으로 얻은 배움을 바탕으로 꾸준히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또한 "팀과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 스튜디오를 위한 작업 등이 많았던 만큼 현재는 개인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나 이번 어셔와의 작업에서 받은 영감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해니에게는 댄서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도, 힘든 순간도 바로 '지금'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컸다. 올해에는 퍼포먼스 준비부터 어셔와 작업까지의 일정으로 타이트한 시기를 보냈다. 그 모든 과정이 제 질문을 온전하게 충족해주는 작업들이었고, 결국 그걸 모두 해냈다는 것이 참 뿌듯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게 너무 새롭고 또 규모가 큰 일들이 지나가고 나니 현실 감각이 둔해졌다. 바빴던 일정이 지나고 여전히 제 템포를 찾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비워내고 제대로 쉬어내는 과정에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습 중이라는 것이 해니의 설명이다.
'한국인 안무가 최초로 어셔와 협업'이라는 굵직한 성과를 이룬 해니는 앞으로도 성장을 거듭할 전망이다. 그는 "춤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은 정말 다 해보고 싶다. 내가 그 경험들을 미래에 어떤 작품으로 만들어낼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 춤, 창작물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냥 보여드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크리에이티브로 참여한 수업, 무대, 필름, 행사 그 어떠한 작업을 접하든 사람들이 '해니를 만났다'라고 느끼면 좋겠어요. 그런 경험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