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20회 반환 요구에도 요지부동… 소유자 명예회복이 자진반환 열쇠?

입력
2024.10.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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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20차례  반환 요구 공문
배익기 '도둑 취급'에 반발, 여전히 모르쇠
자택에 '세종대왕상' 설치하고 외부 소통 줄여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돼 언론에 공개됐다가 이후 행방이 묘연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반환을 놓고 소장자 배익기(61)씨와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재 당국에 불신감을 품고 있는 배씨와 법원 판결에 따라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는 국가유산청의 원칙 사이에 타협점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상주본을 국가가 회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2019년)에 따라 불법 소유자인 배씨가 조속히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 20차례 배씨에게 반환 촉구 공문을 발송했다. 반면 배씨는 "국가유산청과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자택에서 만난 배씨는 국가유산청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재작년 5월 국가유산청이 상주본 회수를 위해 시도한 강제집행이 불신감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배씨는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도둑 취급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배씨는 골동품 판매상인 조모씨로부터 상주본을 훔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2년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훔쳤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초 배씨를 직접 면담하기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2015년 불에 그을린 상주본 일부가 공개된 터라 사진이라도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배씨는 이조차 거부했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현재 30가구 남짓한 마을 주민과 왕래도 단절하고 자택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상황이다. 지난달에는 자택 입구에 인근 폐교에 있던 세종대왕상을 옮겨왔다. 의자와 익선관 등을 황금색으로 칠하고, 세종대왕을 공경하고 흠모한다는 뜻을 담아 흠정대(欽定臺)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좌 뒤편에 놓이는 '일월오봉도'를 본뜬 그림도 그렸고, 향후에는 전각을 만들 계획도 밝혔다.

법적으로는 정부의 소유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배씨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본을 찾을 길이 없는 만큼 일각에서는 현실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굳게 닫힌 배씨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이므로 정부나 문화재 당국이 새롭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형사와 민사 재판에서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한 게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이라며 "협상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기존의 방식은 모두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현 상황에서 국가유산청 차원의 대응이 힘든 만큼, 지자체나 한글학회, 세종대왕 후손 등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할 사람이나 단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선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례로 경남 진주 지역 시민단체는 2008년부터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약탈된 국보급 문화재 '연지사 종' 환수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종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후쿠이현 신사에 반환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반발을 샀다. 대화 자체가 힘들었지만 '문화재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접근법을 바꿨고 2022년에는 공동 조사를 통해 녹슨 표면 등의 보수작업에 협조하면서 환수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당장 환수가 어렵더라도 소장자와의 기초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국가유산청 문화재사범단속팀 관계자는 "당장에 뚜렷한 방법은 없지만 꾸준히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소장자와의 지속적 소통을 통해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안동본)을 매입한 간송 전형필의 맏손자인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은 "훈민정음 해례본 안동본과 상주본이 나란히 전시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상주=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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