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가 ‘부부 강간’ 범죄화를 공식 반대했다. 혼인 관계로 맺어진 두 사람의 성행위를 제3자에 의한 강간과 동급으로 두는 것은 결혼 제도를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인권 유린이 만연한 인도에서 또다시 시대를 역행하는 주장이 나오면서, 현지 여성·인권 단체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6일 인디아익스프레스와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대법원에 “부부간 강제 성행위를 강간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며 이를 처벌 대상에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내무부는 지난 3일 제출한 49쪽 분량 진술서에서 “남편이 아내 동의를 위반할 권리가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해당 행위를 ‘강간’이라고 명시하고 형사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적시했다.
또 “이를 범죄에 포함하는 것은 부부 관계의 섬세한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결혼 제도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성관계) 동의 여부를 개인이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 법이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부부 강간을 혼외 강간보다 더 관대하게 다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인도 중앙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부 강간 범죄화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디아익스프레스는 “15개 주(州) 가운데 델리 등 3개 주만 정부 주장에 반대했고 나머지는 부부 강간 예외 유지를 지지했다”며 “심지어 국가 여성위원회마저 정부 의견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부부 강간은 인도 사회에서 오랜 논란거리다. 인도 정부가 2019~2021년 사이 가족 건강 조사를 실시한 결과, 18~49세 기혼 여성 6%가 배우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숫자로 따지면 약 1,000만 명에 달한다. 응답자 18%는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처벌은 사실상 전무하다. 인도에서 강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소 징역 10년에 처해진다. 그러나 상대가 배우자일 경우는 예외다. ‘남성이 아내와 하는 성적 행위는 성범죄가 아니다’라는 형법 예외 조항 때문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19세기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인도 내에서는 몇 해 전부터 구시대 유물인 부부간 성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이 잇따랐다. 2022년 인도 대법원은 남편의 강제 성행위로 인한 임신을 임신 중지(낙태) 사유로 인정하면서 ‘부부 강간’ 개념을 공식화했지만, 이를 위법 행위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여성·인권단체는 이후 “부부 강간 예외는 여성의 동의권, 신체적 자율권,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철폐해야 한다고 대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사실상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비판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인도 여성학자 은타샤 바르드와즈는 영국 가디언에 “(부부 강간 비범죄화는)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평등을 부여하는 헌법과 상충된다”며 “정부가 빅토리아 시대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부간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콩고 등 32개국에 달한다. 영국 법원은 1991년 부부간에도 성범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했고, 한국은 2009년 판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