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지하 터널' 들어선 텔아비브 '인질 광장'... 전쟁은 이스라엘 풍경을 바꿨다

입력
2024.10.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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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1년, 이스라엘을 가다-2신>
'문화 공간' 미술관 앞 '인질 광장'으로 바뀌어
"언젠가 사라져야 할 공간" 임시 조형물 가득
가자지구 터널 재현한 뒤 "이렇게라도 기억..."

가자지구 전쟁 개전 1년을 이틀 앞둔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중심 도시 텔아비브는 평온해 보였다.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을 즐기는 이들로 텔아비브 도심 지중해 해변은 아침부터 붐볐다. 커피와 함께 오전을 보내는 남녀,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는 가족들로 공원과 카페는 북적였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도시를 들여다보니 텔아비브는 1년째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한 이후 하마스에 납치된 251명 중 아직 귀환하지 못한 97명을 빨리 구출해야 한다는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인파 옆으로 '그들(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라'(Bring them home now)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휘날렸고, 시내 맥도널드 매장 내부 스크린으로는 인질들 사진이 끊임없이 나왔다.

텔아비브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둘러싸인 중심가 광장은 인질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응축된 대표적 공간이다.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앞처럼, 텔아비브의 대표적 문화 공간이었던 이곳에는 이제 '인질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스라엘방위군(IDF) 본부와 마주한 이곳에서 지난 1년간 인질 가족과 시민들이 주도한 집회·시위가 열렸기 때문이다.

광장은 엉성하게 조성됐다. '인질 광장' 안내판은 임시로 가져다둔 기둥에 허술하게 올려져 있었고, 집회·시위를 주도하는 무대도 헐겁게 설치돼 있었다. "인질 전원이 돌아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장소라 완벽하고 영구적인 무언가를 설치하지 않았어요." 인질 가족 등이 주축이 된 단체 '인질 가족 포럼'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오르나 고넨은 이렇게 설명했다.

광장 한쪽에 놓인 커다란 식탁 옆으로는 돌아오지 못한 인질 숫자를 상징하는 의자 97개가 놓여 있었다. 최연소 인질인 크피르 비바스(납치 당시 9개월) 주변으로는 형 아리엘(4), 아빠 야덴(34), 엄마 쉬리(32)의 의자가 옹기종기 놓였다. 식탁을 둘러보던 한 시민은 "곧 이렇게 앉아 식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 가운데 놓인 20m 길이의 회색 터널은 가자지구 지하터널을 상징한다고 했다. 인질 누군가가 여전히 붙잡혀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마스의 은신 공간이다. 터널 안에선 물방울, 발자국 등의 소리가 들려 '진짜 터널'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고넨은 "감히 그들의 고통을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라도 인질을 계속 떠올리기를 바라며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 공격을 받은 키부츠(공동 소유 기반 생활 공동체)들은 저마다 광장에 텐트를 치고 인질의 귀환을 염원하고 있었다. 5명이 하마스 인질로 붙잡혔던 나할 오즈 키부츠가 마련한 텐트로 들어가니 3명의 사진 옆에 '귀환' 표시가 붙어 있었다. 텐트를 지키던 나할 오즈 출신 아얄 셀라는 아직 귀환하지 못한 차히 이단(49)과 옴리 미란(46)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의 나이는 펜으로 지워졌고, 그 옆에 50, 47이라는 숫자가 새로 쓰여 있었다. "그들은 살아서, 한 살씩 더 먹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셀라가 두 사람과 모든 인질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말했다.



텔아비브=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