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포격에 잠 못 자...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레바논 교민들 '눈물의 귀국'

입력
2024.10.05 15:48
5일 오후 1시 성남공항에 도착
"집 흔들려서 잠도 잘 못자" 울먹
"한국, 어느때보다 자랑스러워"

"저희 집 인근에 미사일이 계속 떨어지니까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죠. 조국으로 돌아오게 돼서 감사합니다."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상대로 하는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이 진행 중인 레바논에서 교민들이 5일 무사 귀국에 성공했다. 이들은 한국 땅을 밟자 하나같이 가슴을 쓸어내렸고, 정부에 감사한 마음도 전했다.

교민들은 이날 오후 1시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를 타고 도착했다. 가족과 지인 50여명과 공군 장병들은 '우리 교민들의 안전 귀국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함께 교민들을 맞았다. 교민들이 하나둘씩 밝은 표정으로 수송기에서 내리자, 가족·지인뿐만 아니라 강인선 외교부 2차관·김선호 국방부 차관·이영수 공군참모총장 등 정부·군 관계자들까지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교민들이 전한 레바논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이국희(31)씨는 "레바논은 늘상 위험하다보니 이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대처를 하지만 지금은 일상적이지가 않다"며 "땅이 흔들리고 소리도 굉장히 크다보니 위험하다는 게 현실적으로 인식이 됐다"고 말했다. 김서경(39)씨는 "레바논에서는 밤마다 포격 소리가 들려서 너무 무서웠다"며 "집도 흔들려 잠을 잘 못 잤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교민을 구출한 이재용 외교부 신속대응팀 단장은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서 안전하지 않은 곳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탈출 작전은 침착하지만 급박하게 이뤄졌다. A(61)씨는 "레바논 집에서 공항까지 15분 거리인데 (포격 등 때문에) 안전한 지역으로 우회를 했다"며 "30분이 걸려 군 수송기를 탑승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갑작스럽게 여러 일이 불거지면서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사관에서 많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교민들은 모두 안전한 대피를 가능케 한 정부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정양희(70)씨는 "밤마다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올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그 어느때보다 자랑스럽다"고 울먹였다. A씨도 "저희를 갑작스럽게 수송하는 상황에서도 친절하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전문적인 케어를 해줘서 편안하게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경씨의 자녀는 A4용지에 태극기과 함께 '군인님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려보이기도 했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줘서 고맙게 생각을 하고 그동안의 노력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시그너스를 조종한 박성태 공군 소령은 "재외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영 단장도 "이번에 철수시킨 국민 가운데 미성년자가 30%"라며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일 민간 항공편이 사실상 마비되자 군용기를 투입해 레바논 교민들을 구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군 의무요원 등은 3일 김해공항에서 시그너스를 타고 4일 오전(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해 레바논 교민 96명과 레바논인 가족 1명을 태웠다. 귀환은 4일 오후에 이뤄졌다. 다만 주레바논대사를 비롯한 공관원과 교민 30여명은 이번에 대피하지 않고 현지에 남았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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