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느덧 8개월째 접어든 의정 갈등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며 전제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 달라고 의료계에 거듭 제안했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내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에 대해선 이미 입시가 시작돼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과 환자들에게 더는 걱정과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고 이를 위한 첫걸음은 바로 대화”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언급하면서 “전제 조건이나 사전적 의제를 정하지 말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허심탄회하게 의료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사태 해결에 힘을 모으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더 열린 자세로 진정성 있게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각각 만난 자리에서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유연하게 대화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는 연일 의료계에 유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최근 구체적 시행 방안이 나온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설치 같은 의료계와 협력이 필요한 주요 정책 추진을 계기로 의정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신청 접수를 2일부터 받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응급·희귀 질환 진료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중증 수술 900여 개의 수가(의료행위 가격)를 대폭 인상했다.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의료인력 규모를 과학적으로 다룰 추계위도 연내 발족한다. 정부는 위원 13명 중 과반인 7명을 의사단체 몫으로 배정하고 18일까지 위원 추천을 해달라고 의사단체에 요청한 상태다.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의료계가 적극 참여할 때 현장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들어간 실질적인 의료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며 거듭 참여를 요청했다.
다만 ‘의제 제한 없는 대화’ ‘열린 자세’ 같은 발언이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선 정부 관계자 모두 선을 그었다. 이미 내년도 입시 수시 모집이 지난달 중순 마감됐고 수능시험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와 내년도 증원 백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박 차관은 “의료계가 과학적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다면 추계위에서 2026년 의대 정원도 논의할 수 있다”며 우회적으로 내년도 정원 협의 불가 방침을 밝혔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도 이날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2025학년도 정원 문제는 의제 논의와 별개로 이미 사실상 활시위를 떠났다”고 못 박았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2026학년도 감원을 보장하라는 대한의사협회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따져서 내놓은 2,000명 증원이 오답이라면 1,500명이든 1,000명이든 새로운 답을 내달라”며 “원점에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같이 계산해 보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