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이 준 선물

입력
2024.10.05 04:30
19면
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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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동요는 무엇입니까.” 대답과 함께 첫 소절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마음속 주크박스가 오랜만에 가동된 듯 너도나도 허밍을 흥얼거렸다. 산 하고 하늘 하고 누가 누가 더 푸른가,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아빠 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첫 소절만 불러달라 제안했건만 멈출 새 없이 후속 멜로디까지 이어졌다. 누군가의 독창은 금세 주변까지 전파되어 중창으로도 몸을 불렸다. 장식음처럼 웃음소리도 만발했다. 이제껏 강의실에서 수많은 음악을 다뤄왔지만 그 어떤 음악을 소개할 때보다 행복하고 꾸밈없는 표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음의 빗장을 일거에 무장 해제시키는 동요의 힘은 대체 뭘까.

한국의 첫 창작동요는 윤극영의 '반달'이다. 은하수에 깃든 반달을 하얀 쪽배에 비유하고, 달에 토끼가 산다는 민담을 담고 있다. 마지막 구절인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이 동요가 처음 발표됐던 일제강점기와 무관치 않다. 어려운 시기를 관통하는 아이들의 피폐한 정서에 샛별의 희망을 노래로 북돋웠다.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이 1924년 발표됐으니 한국 동요의 역사는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다. 식민지로부터 해방, 한국전쟁과 재건, 산업화와 민주화 등 역사의 굴곡을 헤쳐오면서도 동요의 아름답고 맑은 악상은 순수한 동심을 다독여 지켜왔다.

유년 시절, 엄마의 음성으로 처음 듣는 동요는 청각적 기억에 깊이 각인되기 마련이다. 이 원초적 예술 체험은 삶의 굽이굽이 큰 힘을 발휘하면서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일깨운다. 동요의 선율은 소박하고 간결하다. 자극적인 도약보단 넓지 않은 음역 안에서 나란한 음정으로 순차 진행한다.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리듬으로 치장하지 않고, 자연스레 순리대로 흐른다. 그래서 동요의 악상은 청각적 DNA에 더 오래도록 짙게 뿌리내린다.

창작동요 100주년을 기념한 뜻깊은 기획전 '반달이 준 선물'이 경기도 이천에서 열렸다. 100년을 관통해 순수한 동심과 고운 심성을 다독였던 수많은 동요가 전시장 곳곳에서 마음을 공명시켰다. 윤극영의 당부가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샘물처럼 깨끗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할 때 사랑의 나무는 푸르름을 더해 갈 것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