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야한 책 본다" 얼차려 줘 학생 자살… 대법원 “정서 학대”

입력
2024.10.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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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습시간, 라이트노벨 소설 본 학생에
"교우들 앞 수치심·좌절감 극심했을 듯"

자습 시간에 대중소설(라이트 노벨)을 읽던 중학생이 도덕 선생님에게 걸렸다. 교사는 이 학생에게 "야한 책을 본다"고 야단을 치며 '엎드려뻗쳐' 얼차려를 시켰다. 학생은 사건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교사의 이 행위는 정서적 학대였을까, 정당한 훈육이었을까?

대법원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봤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교사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아동학대 재범 예방강의 수강명령 4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12일 확정했다.

A교사는 2019년 경북 포항시 한 중학교에서 도덕교사로 근무하다가 자신이 지도하던 자율학습 시간에 B(당시 중3)군이 읽고 있던 책을 빼앗으며 "이거 야한 책 아니냐"고 물었다. B군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야한 종류의 책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A교사는 벌로 20분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A교사는 B군의 친구에게 책을 주면서 "야한 거 나오는지 체크를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B군은 교실에 혼자 남아 있다가 '따돌림을 받게 됐다'고 호소하는 내용을 도덕 교과서에 적고 투신 자살했다. 조사 결과, B군이 보던 책은 학생들이 흔히 접하는 장르소설인 '라이트 노벨'이었다.

1심은 교사의 행동을 정서적 학대로 판단하고,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아동복지법상 금지되는 정서적 학대행위란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로 아동의 정신건강을 해치거나 정신건강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정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피해 학생이 교우들 앞에서 느꼈을 수치심이나 좌절감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자신의 행동이 정서적 학대 행위가 아니라고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공개된 교실에서 체벌이 20분가량 지속된 점 △'엎드려뻗쳐' 얼차려가 해당 학교에서 허용되지 않는 점 △이 사건 행위 후 피해자가 손등을 깨무는 행동을 보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형량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전까지 두 사람이 우호적 관계에 있었고, 해당 교사가 이전에 학생들을 학대한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 역시 같았다. 대법원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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