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도 조류독감 걸리나?… 베트남 동물원서 호랑이, 사자 등 48마리 폐사

입력
2024.10.04 04:30
폐사체서 조류독감 H5N1 바이러스 검출
인간 감염될 경우 사망 확률 50% 이상


베트남의 동물원에서 최근 50마리 가까운 호랑이와 사자, 표범이 집단 폐사했다. 이들 중 일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형(H5N1)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 베트남 보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3일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8월 이후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 비엔호아시 ‘망고 가든’ 동물원과 롱안성 ‘미뀐’ 동물원에서 벵골 호랑이 44마리, 사자 3마리, 표범 1마리가 죽었다.

동물들은 죽기 전 피로·쇠약 등의 증세를 보였다. 방역 당국이 폐사한 호랑이 2마리의 부검을 실시한 결과 폐렴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동물 사체에서는 H5N1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구체적인 감염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미뀐 동물원에서 폐사한 호랑이 중 3마리는 지난달 초 망고 가든 동물원에서 적합한 검역 증서 없이 구입해 들여온 것으로 나타나 바이러스가 옮겨갔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당국은 방역 요원을 이들 동물원에 투입, 현장을 검사하고 폐사 동물 사체 처리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망고 가든 동물원 직원 30명과 미뀐 동물원 직원 3명이 죽은 동물들과 직접 접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호흡기 감염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H5N1이 인간으로 전염될 가능성도 있는 탓에 베트남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두 동물원은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과 불과 45km 떨어져 있다.

H5N1은 조류 인플루엔자 A바이러스 가운데서도 고병원성으로 간주된다. 닭, 오리 같은 가금류에게 치명적이긴 하지만, 이름과 달리 조류만 감염되는 질병은 아니다. 사자, 호랑이, 고양이, 강아지, 소 등 다른 포유류도 감염될 위험이 있다. 지난 2004년 태국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호랑이 사육 농장에서도 호랑이 90여 마리가 감염돼 폐사하거나 살처분됐다.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한 번 걸리면 사망할 확률이 50%가 넘기 때문이다. 해외 인체감염 사례 보고에 따르면 H5N1에 감염된 사람 902명 가운데 466명이 숨졌다. 감염될 경우 고열과 근육통,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

학계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새로운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 조류 인플루엔자 연구원인 수레쉬 쿠치푸디 박사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H5N1은 최근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포유류 숙주를 감염시켰다”며 “현재 진행 중인 바이러스 중 대유행 위험이 가장 높은 바이러스”라고 주장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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