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위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한다"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의대 교수들의 거리 집회는 처음이다.
3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선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주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주최로 '의평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가 열렸다. 경찰 추산 350명, 집회 측 추산 500명이 모였다. 적잖은 교수들이 검은색 마스크를 썼고, 참석자들은 '의학 교육 부실조장 시행령 개정 철회하라' '불법증원 밀어붙인 책임자는 물러나라' '의평원이 망가지면 부실의사 양산된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이번 갈등은 의평원 인증과 관련한 정부 시행령 개정으로 불거졌다. 전국 의대들은 교육부가 권한을 위임한 의평원 인증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인증을 통과 못 하면 신입생 모집 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진다. 앞서 의평원은 정원이 늘어난 의대에 대한 평가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자 교육부는 '고등교육기관의 평가, 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의대가 정상 운영되지 못하거나 교육 여건이 떨어지는 경우 의평원이 불인증을 하기 전 1년 이상 보완 기간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의대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의평원에 압력을 가하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평원을 말살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평원은 의대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정장치"라며 "국정감사에서 (국회가) 의평원 무력화와 의대 부실화를 초래하는 모든 과정을 철저히 밝혀달라"고 날을 세웠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도 "오늘 이 자리는 최초로 교수들이 모이는 집회의 자리고 우리의 투쟁이 시작되는 자리"라며 "8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는 2,000명이라는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의대 증원으로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불가능해지자 의평원 무력화를 통한 후진국 수준의 의사를 양산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의사 출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동참했다. 박 위원장은 "의평원을 무력화하려는 정부 행위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관련 부처 장관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수표가 되고 있다"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 의원은 "실력이 부족해도 의사 고시를 통과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가장 큰 손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국민 생명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결의대회 참석자들은 의대 증원 중단과 불법 증원을 밀어붙인 책임자 처벌도 촉구했다. 아울러 정원 증원이 지방 의료를 살릴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세옥 부산대 의대 비대위원장은 "지방의대는 강의실도, 실습실도, 교육 교원들도 준비돼 있지 않다"며 "날림 시설공사로 지방의료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