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청렴국’ 싱가포르에서 4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전직 장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장관급 공직자가 부패 관련 범죄로 싱가포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59년 만에 처음이다. 싱가포르의 ‘부패 무관용’ 원칙을 보여주는 판결이라는 평가다.
3일 현지 공영 CNA방송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법원은 이날 수브라마냠 이스와란(62) 전 교통부 장관에게 뇌물 수수와 사법 방해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앞서 현지 검찰은 징역 7개월을 구형했는데, 오히려 형량이 늘었다.
사건을 맡은 빈센트 훙 부장판사는 “공직자가 성실성과 책임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공공 기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며 “피고가 저지른 범죄 심각성과 대중의 믿음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검찰 구형) 형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스와란은 교통부 장관 시절인 2022년 싱가포르 호텔·부동산 재벌 옹벵셍의 전용기를 이용해 카타르 도하를 방문하고, 그와 건설 회사 임원 등으로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포뮬러원(F1), 뮤지컬 티켓과 고급 위스키, 자전거 등 40만 싱가포르 달러(약 4억1,000만 원) 상당의 선물을 받았다. 싱가포르는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50싱가포르 달러(약 5만2,000원) 이상 금품과 선물 수수를 금지하고 있다.
그는 또 사건을 조사하던 싱가포르 반부패 조사기구인 부패행위조사국(CPIB)이 옹벵셍의 개인 제트기 탑승 내역을 압수하자 뒤늦게 전용기 이용 비용과 호텔 숙박비를 상환하려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선 사법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스와란 전 장관은 싱가포르 독립 이후 형법 165조(뇌물 수수) 위반으로 기소된 첫 번째 싱가포르인”이라고 전했다. 현지에서 정치인이 부패 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것도 38년 만이다. 앞서 1986년 당시 국가개발부 장관이 100만 싱가포르 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 직전 자살했다.
소키 힌 싱가포르 사회과학대 부교수는 현지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에 “이번 판결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스웨덴과 국가청렴도 공동 5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정부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 장관급의 평균 연봉은 100만 싱가포르 달러(약 10억2,500만 원)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뇌물 스캔들’ 선고를 직접 보기 위해 많은 싱가포르인이 이날 이른 새벽부터 법원을 찾았다. 법원 앞에는 방청권을 얻기 위한 긴 줄이 생겼다고 현지 매체들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