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폴 블룸(60)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때 묻지 않은 아기의 마음속을 들여다봤다. 결과는 이렇다. 우리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
발달심리학 대가인 블룸 교수가 쓴 '선악의 기원'은 심리학, 진화생물학, 철학 등을 넘나들며 인간성을 본격 고찰한 책이다. 이기적이고 추한 면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본성을 뛰어넘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블룸 교수의 연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없는 아기에게 선악을 물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책을 번역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옮긴이의 글'에서 "우리가 어떻게 선과 악을 구분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며 사는지를 아기에게 물어 답을 찾아낸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이 주제에 관해 읽은 그 어떤 책보다 탁월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밝혔다.
블룸 교수의 영유아 대상 연구는 공동연구자이자 아내인 캐런 윈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끈 예일대 유아인지센터에서 이뤄졌다. 1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인형극 실험에서 이들은 공을 돌려주는 '착한' 인형과 공을 훔치는 '못된' 인형을 구별해냈다. 못된 인형에게서는 간식을 빼앗았다. 생후 3개월 된 영아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도 아기들은 '돕는 사람'을 더 선호했다. 이외 다양한 시나리오로 수행한 실험 결과, 아기들은 일관되게 착한 사람에게는 끌리고 나쁜 사람은 거부했다. 이는 아기가 선악을 분별하는 도덕감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 블룸 교수는 봤다.
다만 인간이 타고난 선함에는 한계가 있다. 아기들은 낯선 사람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도덕성의 어두운 면"에 대해 블룸 교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구별을 지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삶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어떻게 구별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보편적 도덕 규범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노예 제도가 대표적 예다.
책은 통념을 뒤집는다. '흑인 아이들도 백인 아이를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는 부부 심리학자 케네스·마미 클라크의 1930년대 연구는 미국 발달심리학 역사상 중요 연구로 꼽힌다. 블룸 교수는 "다인종 학교를 대상으로 하면 아이들은 인종에 개의치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인종적 편향은 나중에야, 그것도 특정한 환경(이를 테면 단일인종 학교)에서 양육되는 아이들에게만 스며든다"고 반박했다.
특히 성도덕에는 보다 원시적인 혐오가 깔려 있다고 블룸 교수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의 게이 혐오는 진화적 관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치열한 짝짓기 시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동성애자 남성에게 이성애자 남성은 감사를 표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반감을 느낀다는 게 그의 말이다. 블룸 교수는 "혐오성 반응은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종교와 법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관행에 의해 강화되고, 유도되고, 신성시된 것"이라며 "혐오감을 도덕적 신호로 여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혐오를 억제하고 도덕성을 발휘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수단으로 블룸 교수는 '이성'을 강조한다.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깨달은 것처럼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통해 도덕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작 '공감의 배신'에서도 나와 우리편에 대한 공감은 상대를 향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공감보다는 이성적 연민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한 바 있다.
인간은 그저 아기로만 그치지 않는 그 이상의 존재다.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도덕적이었던 아기를 매우 도덕적인 어른으로 변화시키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 이는 우리의 연민, 우리의 상상력, 우리의 훌륭한 추론 능력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