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의 법적 책임과 관련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유죄, 구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두고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나 재난·안전관리기본법상 '재난 관리 책임기관'에 해당하는데도, 사고의 책임을 경찰에게만 묻는 것이 가혹하다는 반응이다.
2일 블라인드 등 온라인 직장 커뮤니티에서는 이태원 참사 1심 판결을 둘러싼 현직 경찰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그간 경찰관 직무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었는데, 책임을 지울 수 있는 해석이 나왔다"는 이야기부터 "소방·구청은 다 빠져나가고 경찰만 독박이고, 앞으로 경찰 책임이라는 선례까지 생겼으니 답이 없다"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법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에게 금고 3년형을,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경찰에겐 국민 생명과 신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지만, 지자체는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 안전계획을 수립해야 할 의무 규정이 없다"며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적잖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날 본보와 만난 서울의 한 지구대 팀장 A 경감은 "경찰 업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웬만한 일은 다한다고 봐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사고 나면 경찰 책임이라니 주취자 신고나 자살 신고가 들어왔을 때도 행여 문제라도 생길까 봐 스트레스가 크다"고 전했다. 다른 지구대 B 경감은 "사람들이 몰리면 통제가 쉽지 않은데, 당장 주말에 있을 불꽃축제에서 사람이 떠밀려 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도 있다. 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공무원은 승진·수당 등 혜택을 받는데, 경찰은 이런 당근도 없이 채찍만 가한다는 볼멘소리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올해 초 발표한 '공무원 업무집중 여건 조성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재난 안전 분야에 2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에 대해 △승진임용 배수 범위 적용을 면제하고 △근속 승진 기간도 1년을 단축해 심사 요건을 완화하며 △기존 8만 원이던 재난업무 수당을 최대 12만 원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눈·비·태풍·화재가 있을 때마다 불려나가고 큰 재난이 터지면 형사책임까지 뒤집어쓰는 지자체 방재 담당 보직이 기피 1순위로 꼽혀 온 것에 대한 '당근' 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일반직 공무원에 대한 규정이라, 특정직인 경찰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저 경찰청 차원에서 별도로 재난수당 지급을 인사처에 요청한 상황이다. 서울의 한 경찰관 C씨는 "재난 담당 근속 혜택은 지자체가 가져가고, 경찰은 재난업무 부서가 아니라 혜택도 못 받는데 우리만 책임을 지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경찰도 재난 대책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의 한 파출소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도 경비 책임이 있다"면서 "(안전대비책을) 보완하고 있고 지금은 참사 때보다 훨씬 안전 관리가 나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있기 전부터 주민들이나 지자체와 훨씬 더 자주 회의를 열고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산서는 2일 범죄·재해·재난으로부터 이태원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이태원관광특구상인연합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