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증시에 불이 붙었다. 지난달 30일 상하이종합지수는 8%, 선전종합지수는 11% 폭등했다. 2008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3년간 하락한 중국 증시가 부활한 건 국가 차원에서 주가 부양을 위한 총력전에 나선 영향이다. 지난달 24일 판궁성 인민은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등 3대 금융수장들이 한목소리로 돈을 풀겠다며 기자회견을 연 게 신호탄이었다. 이후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과 정책 금리를 잇따라 내린 데 이어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대출 금리까지 인하토록 ‘지도’하고 있다. 아파트를 살 때 최저 계약금 비율도 15%로 낮췄다. 85%는 은행에서 빌려 주겠다는 이야기다. 다주택자도 상관없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파산과 비구이위안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은 주택시장에 숨통이 트였다.
2분기 성장률이 연간 목표치(5%)를 밑돌자(4.7%)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발빠르게 경제 회의를 열고 '보이는 손'을 가동한 효과가 컸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다 실수한 경우엔 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면책조항’까지 발표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기업을 돕고 내수를 진작하는 데 모든 방법을 강구하란 주문이다.
중국이 경제 살리기에 진심을 보이자 월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자은행들은 중국 관련 투자 회의를 잇따라 열고, 헤지펀드들은 “중국 상승장에 올라타라”는 메시지를 낼 정도다.
중국 증시의 반전이 눈길을 끌지만 사실 올해 주요국 중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은 미국이다. 인공지능(AI)발 기술주 랠리는 거침없는 주가 상승으로 지금도 신고가 경신 드라마를 쓰고 있다. 대표 지수인 S&P500은 올해만 이미 43번째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AI 시대의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상승장을 주도한 데 이어 이젠 미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하도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이처럼 미중 증시가 모두 오르며 국내 주식 시장(국장)에 투자한 개인투자자(개미)만 박탈감이 크다. 올 들어 2일까지 코스피 지수는 4% 넘게, 코스닥은 13% 가깝게 하락했다. 미국은 20%나 상승했고 중국도 13% 가까이 올랐는데 우리만 처참한 성적표다. 주요 20개국과 비교해도 한국 증시는 최하위권이다. 코스닥만 보면 우크라이나와 3년째 전쟁 중인 러시아에도 밀린다. 정상적인 국가 중에선 사실상 전 세계 꼴찌다. 25% 가까이 상승한 대만 증시와 비교하면 자괴감은 더 커진다.
유독 한국 증시만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가는 기업 미래 가치를 반영한다. 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혁신과 미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들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 주요 대기업이 기존 사업 외에 새롭게 보여준 건 거의 없다. 끊임없는 혁신 경쟁으로 시총 1위 자리가 계속 바뀌는 미국과 대조된다. 더구나 이젠 중국 기업들도 우릴 넘어서고 있다. 2분기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만 봐도 LG에너지솔루션(14.7%) 삼성SDI(7.1%) SK온(4.3%)을 다 합쳐도 중국 CATL(31.6%)에 못 미친다.
정부도 안일하다. 금융투자소득세를 둘러싼 정책 혼선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만 키웠다. 기대를 모았던 K 밸류업 지수도 주주환원에 앞장서온 곳은 빠지고 적자 기업은 포함되며 처음부터 신뢰를 잃었다. 그럼에도 용산은 물론 여야도 민망한 파벌 싸움을 벌이고 추잡한 정치 셈법에 빠져 자본시장 발전에는 관심도 없다. 결국 외국인은 한국을 떠나고, 국장을 지키던 개미만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 '10만전자' 된다던 삼성전자가 '5만전자' 될 처지인 게 지금 한국 증시의 현주소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는 하세월인데 어디서도 위기감은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