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이라는 이름 옆에는 여러 직함이 붙는다. 그가 운영하는 범죄과학연구소의 소장에서부터 교수, 방송인, 전직 경찰과 프로파일러, 전직 국회의원까지. 이제는 여기에 ‘추리소설가’까지 더해졌다.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인 그의 첫 장편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통해서다.
얼마 전 경기 수원에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에서 만난 표 작가는 “인생 전반기에는 주어지는 기회를 회피하지 않고 대응해 왔다면, 이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후반기에 이르러 하게 된 것”이라면서 소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카스트라토’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여자 화장실에서 절단된 남성의 고환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세종문화회관에 이어 서울 용산구 상가 여자 화장실, 서울 종로구 카페 여자 화장실 등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자 가상의 인왕경찰서 소속 프로파일러 ‘이맥’이 실체를 쫓으려 나선다.
표 작가는 이 소설이 1991년 경기 부천경찰서 형사였던 자신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성범죄가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처벌이 불가능한 친고죄였던 탓에 합의하고 유유히 웃으며 경찰서를 나서던 피의자의 잔상이 계속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서를 떠나는 강간범을 쫓아가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는 20대의 청년이 “현실로 옮기지 못한 그 공상이 씨앗으로 30년 동안 묵혀 있다가 소설로 발아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성기 절단 사건의 피해자들이 성범죄 가해자임이 밝혀지면서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타인의 신체 훼손이 명백한 범죄인 만큼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응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포에 질린 성범죄자들은 "체포해달라"며 경찰서로 들이닥친다. 표 작가는 성기 절단이라는 사적 보복이 “성범죄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성범죄자 입장에서 가장 두렵고 공포스러운 처벌을 가상으로나마 느껴보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다만 “약자가 고통받고 공격당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표 작가의 말이다. 그는 “처벌과 응징을 피해온 강자들이 대가를 치르는 모습 위주로 (소설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드리려고 한다”며 “그것이 나의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가치관이자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표 작가는 그간 현장에서 다양한 범죄 사례를 접했다. 그는 “현실의 범죄를 연상하게 만드는 소설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작가나 콘텐츠 제작자로부터 범죄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언제나 거절했다”며 “소설뿐 아니라 유튜브, 방송 등에서 범죄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데에는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표 작가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10년 전. 420쪽에 달하는 ‘카스트라토’는 당초 두 배의 가까운 길이였을 정도로 그는 소설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프로파일러 ‘이맥’을 주인공으로 한 후속작도 이미 집필에 들어갔다.
후속작에서는 성범죄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온갖 거악으로 징벌 대상을 확장할 계획이다. 표 작가는 “앞으로는 더 과감하게 틀을 깰 것”이라고 했다. ‘이맥’을 영국 ‘셜록 홈스’나 미국 ‘형사 콜롬보’, 벨기에 ‘포와로’ 같은 한국 추리장르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이맥’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진 보통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의 자식처럼 생각하고 함께 잘 키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