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다친 쿠팡 배송기사에게 "두 달 배송료 물어라" 갑질한 대리점

입력
2024.10.02 17:12
발목 부상으로 사직 의사 밝혔는데
대리점 "배송률에 피해, 두 달 무조건 일해야"
배송률 떨어지면 일감 회수 가능한 쿠팡 규정
쿠팡, '과로 조장' 지적에 배송 목표 일부 삭제키로

쿠팡 로켓배송을 하다 전치 4주 부상으로 일을 쉬게 된 배송기사에게 소속 대리점이 "일을 못 하게 돼 대리점에 피해를 입혔으니 두 달 치 배송료를 물어내라"고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인데도 휴식권 보장은커녕 도리어 비용을 떠넘긴 것이다. 원청인 쿠팡 역시 대리점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과 전국택배노조는 2일 국회 소통관에서 '사문서 위조! 임금체불! 용차비 강제청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리점 갑질 폭로' 기자회견을 했다. 피해자인 A(39)씨는 "삼형제를 키우기 위해 저희 부부는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었고, 낮에는 미용실 문 열고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는 아이들만 재워놓고 쿠팡 택배 일을 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올해 3월부터 인천 소재 CLS 대리점과 위수탁 계약을 맺고 '백업 배송기사'로 일을 시작해 8월 말 고정 배송 구역을 맡았다. 그러나 배송일을 하며 생긴 아킬레스건염이 점점 심해지자 지난달 9일 퇴사 의사를 밝혔다.

대리점 측은 쿠팡 본사 규정인 '배송 수행률'을 언급하면서 후임자를 구하는 데 두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하니 그때까지 무조건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CLS는 대리점이 정해진 배송률(월평균 95%)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일종의 페널티로 배송 구역(일감)을 회수할 수 있게 위수탁 계약을 맺고 있다. 즉 쿠팡 규정에 따라 대리점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아파도 쉬지 말고 버티고 일하라'고 A씨에게 요구한 셈이다. A씨는 "일상생활도 못 하는 통증 때문에 (사직) 의사를 밝힌 건데 무조건 일해야 한다는 말에 착잡하고 상당한 스트레스로 잠도 들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배우자가 며칠 임시로 A씨 대신 일했지만 더는 어려웠고, A씨도 추석 연휴 전치 4주 부상 진단을 받으면서 재차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리점은 11월 초까지 두 달 대체자 인건비(용차비)를 A씨에게 물리겠다며 8, 9월 임금(배달 수수료)을 줄 수 없고 도리어 추가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A씨가 노조 도움을 받아 확인한 결과 관할 구청에 신고된 '택배 전속운송계약서'에는 2개월 관련 내용이 없을뿐더러 애초 A씨 동의하에 직접 서명을 한 문서도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A씨 명의로 허위 서명을 한 것이다.

윤 의원은 "CLS는 원청 택배사로서 자신들과 계약된 하청 대리점의 임금 체불, 사문서 위조, 용차비 강제 청구에 대한 관리·감독을 진행하고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의 상시적 구역 회수 제도가 현실에서 이렇게 또 다른 갑질 이유가 되고 있다"며 "쿠팡 위수탁 계약서는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CLS는 위수탁 계약서를 통해 대리점에 요구해 왔던 10개 목표치 중 휴무일 배송률, 프레시백 회수율 등 6개 항목을 삭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감 회수'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목표치들은 쿠팡 배송기사들의 과로를 조장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적됐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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