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군인들을 상대로 군사기밀인 암구호(暗口號)를 넘기는 조건으로 대출을 해준 불법 사채업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 한연규)는 전북경찰청 안보수사1대,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와 공조 수사를 통해 지난달 30일 군사기밀보호법, 대부업법, 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무등록 불법 대부업자 A(37)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지난달 3일 업체 직원 B(32)씨, 지난 7월 29일 직원 C(27)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군 간부 10명에게 “암구호를 알려주면 대출을 해주겠다”고 제안해 총 3명으로부터 7개 암구호 등을 수집했다. 나머지 군 간부 7명은 A씨 제안을 거절해 미수에 그쳤다. 암구호는 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문어와 답어로 구성된 말로,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3급 비밀로 규정된 군사기밀이다. 보안이 중요한 만큼 매일 바뀌며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다. 유출될 경우 즉시 폐기해야 하고 새로 만든다.
해당 군 간부들은 인터넷 도박, 가상화폐 투자 실패 등으로 급전이 필요해 A씨 등으로부터 개인당 100만 원 안팎의 불법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은 수집한 암구호를 빚 독촉 협박용으로 사용했으나, 현재까지 이를 북한 등 외부로 유출하거나 반국가단체 등에 제공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해당 군 간부들은 사채업자 요청으로 암구호 외에도 피아 식별 띠(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군모나 군복에 두르는 띠)나 산악 기동 훈련 계획 문서, 부대 조직배치도 등 군 내부 지시 공문도 유출했다.
A씨 등은 채무자 41명에게 총 1억 1,560만 원을 대출해주며 최대 이율 연 3만416%을 적용해 원금에 가까운 1억 원을 초과하는 이자를 받은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암구호를 누설한 군인들에게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부대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한 것은 물론 가족 등에게 빚 독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이 사건은 지난 5월 방첩사가 충청 지역 모 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역 육군 대위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암구호를 유출한 정황을 포착하고 전북경찰청에 민간 사채업자에 대한 공조 수사를 요청하면서 본격화됐다. 해당 대위는 지난 6월 제1지역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A씨 등에게 암구호를 넘긴 나머지 군 간부(부사관) 2명에 대해선 현재 방첩사가 수사 중이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이 사건은 불법 대부를 위해 군사기밀 자료를 불법 거래한 신종 유형의 범죄로, 관련자들이 유출·수집한 암구호 등 민감한 군사정보가 반국가단체나 외국에 전파될 경우 국가안보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