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왜 외면하나"… 소설가 조해진의 반복되는 물음

입력
2024.10.02 10:00
17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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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심지어 죽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누군가는 살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금 증명하고 싶었어요."

소설가 조해진은 이런 자신의 말을 증명해 왔다.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타자를 살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작가 자신과 작품을 통해서다. 그의 첫 소설집인 '천사들의 도시'(2008)에서부터 지난달 발표한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에 이르기까지 조 작가는 계속 묻고 있다. "우리는 살릴 수 있는 존재들인데 왜 이를 잊고 사는 것인가."

"외면하기 쉬운 사람들 담는 것이 문학의 몫"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의 고통이 있어서 쓸 수 있는 소설이자 전쟁이나 분쟁이 없었다면 쓸 필요가 없었던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가 10년 전 쓴 단편 소설 '빛의 호위'에서 출발한 신작 '빛과 멜로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 재점령 등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비극을 배경으로 한다. 조 작가는 "전쟁은 무의미하지만, 결국 전쟁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소설을 쓰면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운다"고 했다.

전쟁과 난민, 탈북자 등 조 작가의 시선은 유독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닿는다.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 외면하기 쉽고 또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문학의 몫"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다만 그의 소설 속 사람들은 절망의 순간에 마냥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조 작가는 "심연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상상하려고 했다"며 "그 순간을 다른 인물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로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타인의 고통 이용하지 않게 '진심의 필터' 써야"

'빛의 호위'와 '빛과 멜로디'의 주인공인 '권은'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빈방에 버려진 아이였던 권은은 같은 반 반장인 '승준'이 선물한 카메라를 계기로 분쟁 지역의 사진작가가 된다. 그는 카메라가 자신을 살렸듯, 이제는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소설 속 인물을 단 한 명, 현실에서 만난다면 누구를 고르겠느냐는 질문에 조 작가는 주저 없이 '권은'을 꼽았다. 조 작가는 "'권은'은 번뇌하고 회의하는 인물"이라며 "자신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한 건 아닌지를 끊임없이 검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고독과 외로움, 신념을 곁에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은'의 번뇌와 회의는 조 작가 본인의 것이기도 하다. 조 작가는 자신이 누군가의 고통을 쓸 때 "늘 미안함을 느낀다"면서 "고통 자체보다는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 즉 '고통의 자각'이라는 지점에 더 집중하려고 하지만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이렇게 첨언했다. "그럼에도 증언하는 것이 문학과 예술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대상화에 대한 고민은 놓치지 않은 채로 계속 검열하고 진심이라는 필터를 통해 써야겠죠."

인터뷰를 마친 조 작가는 한국을 찾은 시리아 내전 민간 인명구조대 '화이트 헬멧' 대표의 강연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13년째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자신의 주변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괴롭지만, 보려고 노력한다"는 자신의 말을 지키려는 그의 뒷모습은 작가가 현실에서 만나고 싶어 했던 등장인물과 똑 닮아 있었다.


조해진 작가가 직접 뽑은 '제철문학'은
단편소설 '빛의 호위' “‘빛의 호위’를 읽지 않아도 ‘빛과 멜로디’를 읽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메시지를 담은 ‘빛의 호위’를 먼저 읽고 ‘빛과 멜로디’를 읽으면서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비교해 보신다면 재미있을 겁니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