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3명 공석 임박... '헌재 마비' 누가 현실로 만드나

입력
2024.10.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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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헌법재판관이 오는 17일 퇴임한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 등 총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물러나는 재판관 3명은 모두 국회 몫이어서 후임자도 본회의 표결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170석의 더불어민주당이 미적대고 있다. 헌재는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재판관 3명이 공석이면 멈춰 선다. 이 경우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심리 등도 중단돼 민주당엔 유리하다. 헌재 마비 우려에도 민주당은 서두를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회가 후임 재판관을 뽑지 못한 표면적 이유는 여야가 3명 몫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하지 못한 탓이 크다. 민주당은 의석수에 따라 야당 2명, 여당 1명을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관례대로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이란 입장이다. 직전인 2018년엔 원내교섭단체 3곳에서 1명씩 추천했다. 문제는 이런 힘겨루기 속에 재판관 임기 만료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는 데 있다. 당장 선출해도 청문회와 국회 동의 등을 밟으려면 이미 한참 늦었다. 여야가 한발씩 물러서지 않으면 초유의 헌재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1988년 문을 연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2,000건도 넘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최근에도 온실가스 감축 대책이 미흡하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는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잣대를 제시해 왔다. 이러한 헌재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국회가 오히려 헌재 마비 사태를 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이유가 정치적 셈법에 있다면 이는 직무유기를 넘어 사실상 직권남용 범죄에 가깝다. 민주당은 일부러 헌재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후임 재판관 선출 절차에 적극 나서는 게 순리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탄핵 정국 세몰이에 나섰다는 관측이 커지며 국민 불안감도 적잖다. 국민의힘 역시 어떤 경우든 헌재 재판관 구성의 보수우위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야는 정석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 '나쁜 정치'를 하다간 오히려 국민적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