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개편 태풍의 눈... 'IB'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입력
2024.10.04 11:30
14면
[조태성의 이슈메이커]
'IB전도사'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게 정말 될까. IB, 즉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 얘기다. 2017년쯤 서울시교육청이 IB를 거론하더니 2019년 대구시와 제주도교육청이 처음으로 한국어로 된 IB과정 학교를 각각 3곳과 1곳 지정했다. 각 교육청별로 이런저런 시범 사업이 진행되다가 2024년, 그러니까 올해 초엔 중앙부처인 교육부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다 'IB연구실'이란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그리고 초중고교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조직인 평가원이 IB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얘기다. 학계도 움직인다. 올해 3월 '한국IB교육학회'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곧 대규모 학술대회도 연다.

여기에다 최근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수능 서·논술형 평가 도입, 내신 외부평가제 도입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IB를 떠올리게 하는 얘기다. 국교위는 '산하 전문위원회 차원의 논의'라 깎아내렸다지만 우리도 IB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건 아닐까. 이웃 일본은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2013년 IB에 이미 뛰어들었다.


슬슬 군불 피우는, 아직은 낯선 IB

교육개혁이라면 우린 늘 "4차산업혁명 시대,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남 따라 하기 바쁜 기존의 획일적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 대신 비판적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뒤는 대개 다람쥐 쳇바퀴다. 한국에서 그게 되겠어,라며 물러선다. 그리곤 또다시 변별력 타령에 불수능, 물수능 걱정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이른바 '조국 대전'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아빠 혹은 엄마 찬스로 만들어낸 스펙'이 논란거리가 되자 많은 전문가의 반대에도 정부가 꺼낸 대응 카드는 '정시 확대'였다.

IB는 이 도돌이표를 끝낼 수 있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대안이다. IB는 1968년 유엔 근무자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시작됐다. 모든 평가는 논술로 진행되고, 과목별로 저마다의 주제를 정해 집중탐구한 뒤 이를 최종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내놔야 한다. 실무 총괄본부는 네덜란드에, 채점 본부는 영국에, 한국을 관할하는 아시아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다. 개별 학교에서 평가를 진행하면 전체 채점 본부에서 그간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체 평가를 다시 검증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외부평가를 진행한다. 각국에서 온 다양한 아이를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디플로마 프로그램(DP·Diploma Program)이라 불리는 고등과정은 하버드 등 세계 유명 대학이 선호하는 과정이다. 저마다의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고, 객관적 지표에 따라 평가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영어 IB과정을 택한 일부 외고 졸업생들이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고, 일반 학교의 경우는 수능을 볼 수 없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형태로 대학에 진학한다.


서울대 최우등생의 비결이 '적자생존'이다?

그간 IB 도입을 부르짖어왔던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을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방배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IB 얘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저로서는 기쁘고 또 감사하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지금 IB과정을 채택한 후보학교가 90여 개교, IB과정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 관심학교가 300여 곳 정도 되는데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IB과정을 겪어본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과 맞지 않다, 사교육 자극한다, 해외모델이라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소수 특권층 교육이 된다, 이렇게 걱정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일단 한번 겪어봐야 한다."

이 소장 이야기의 출발점은 2014년 내놓은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시작된다. 서울대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교수법을 연구하던 그에게 서울대 교수들이 털어놓은 고민은 '학생들이 수동적이고 창의적이지 않다'는 거였다. 그래서 서울대 최우등생들, 미국 미시간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비교 분석했다.


결론은 뻔했다. 미시간대 학생들은 무엇을 하건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느라 여념이 없는데, 서울대생들은 강의하는 교수님의 농담,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다 받아 적는 '적자생존'이었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일 리가 없다.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인데 다른 게 없을까, 온갖 가정을 다 넣어 아무리 분석해봐도 적자생존, 그것뿐이었다. 이게 학생들의 문제일까.

-문제는 뭐였나.

"핵심은 학생들이 수동적이고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정작 점수를 매길 때는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다른 얘길 써놓은 학생들의 점수를 깎았다는 거다. 자기가 강의 중에 한 얘길 써야 '아 이 학생 공부했네'라며 점수를 준 거다. 가르친 것과 다른 얘기를 하면 공부 안 했네, 기분 나쁘네라고 반응해버린다. 목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인데 평가는 '교수 말씀 그대로 베끼기'를 해버린 셈이다. 목표에 맞는 평가를 하라, 이 간단한 원리가 관철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서울대에서는...'을 내고는 난처해지기도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책 출간 시점이 때마침 국회의 국정감사 때였고 의원들은 이 책을 근거로 서울대를 비판했다.


-서울대에선 불만이 없었나. 곤란했겠다.

"그때 '이제 관악 쪽에다 발 디딜 생각은 말아라' 같은 날 선 농담은 꽤 들었다. 하지만 그때 오세정 교수님이 맞는 얘기라고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써주셨다. 나중에 뵈니까 자신도 미국 유학 때 엉터리같이 들려도 자기만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놓더니 그걸 화두로 삼아 박사논문으로까지 연결해서 써내는 미국 학생들이 정말 놀라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오 교수님은 경기고, 서울대를 거치면서 수석에 수석을 거듭한 분인데, 그런 분도 충격이었다고 하면 우리 교육이 정말 뭔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창의적 인재를 원하면 창의력을 평가하라

'서울대에서는...' 이 책은 이 소장을 여러 곳으로 이끌었다. 경영대, 의대 등 개별 단과대와 강의 재설계 협업을 진행했다. 연세대 의대에선 '당신 책 보고 학생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는 말까지 건넸다. 대학 말고 우리 공교육, 중고교 과정도 한번 봐달라는 제안도 줄이었다. 여기에서도 문제의 핵심은 똑같았다. 목표와 평가가 따로 놀았다.

-어떤 면에서 그랬나.

"영어의 한 예를 들어보면, 난 처음에 국가교육과정이 쓰기와 말하기를 가르치지 말라는 줄 알았다. 수능, 내신에 그런 평가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교육목표에 보면 쓰기와 말하기가 들어가 있다. 목표가 있는데 이걸 왜 평가하지 않느냐 했더니 둘 사이 대화를 제시한 뒤 상대 질문에 적절한 반응을 고르라는 게 말하기 평가였고, 한 문단을 준 뒤 a, b, c, d 중 어느 글이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느냐 묻는 게 쓰기 평가였다. 그게 어떻게 말하기, 쓰기 평가인가. 강조하자면, 평가하지 않는 능력은 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IB과정은 어떻게 다른가.

"이번에 IB과정 졸업생을 배출한 대구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들고 싶다. 이 학교는 2학년 올라갈 때 IB과정과 일반 고교 과정 중 선택하게 했다. 성적 좋은 아이들은 위험부담이 높은 IB를 회피했다. 그러다 보니 IB를 택한 학생들의 첫 테스트 결과는 대부분 1, 2등급이었다. (한국은 1~9등급 중 1등급이 최상위권이지만, IB는 1~7등급 중 7등급이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졸업 무렵엔 5, 6등급이 제일 많았다. 심지어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한 학생까지 나왔다. IB는 이렇게 문제를 낸다.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친구를 위로하고 극복 방법을 조언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써보라, 교장 선생님에게 어떤 수업의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써보라. 말하기, 쓰기 평가는 이런 거다. 이렇게 평가하니 졸업할 무렵엔 IB과정 아이들이 일반 과정 아이들보다 영어를 훨씬 더 능숙하게 말하고 쓴다."


-단순해 보이지만 어려운 문제다.

"IB가 마냥 쉽지는 않다. '역사'라면 우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쭉 놓고 '시대 순으로 배열하시오' 같은 문제를 낸다. 하지만 IB에서는 '전쟁이 사회 변화를 가속화한다는 관점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전쟁 2가지 이상 사례를 들어서 2시간 동안 서술하시오' 하는 식이다. 자기가 아는 거, 생각한 거 쭉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관점과 주장, 예상되는 반론, 그에 대한 재반론까지 들어가야 점수가 높게 나온다. 왜? 목표가 비판적이고 창의적 인재 양성이니까."


로컬 이슈에 자기만의 접근법을 요구하는 게 IB

-학생들이 엄청 힘들어할 것 같다.

"여러 측면이 있다. 어느 왕 때 무슨 사건, 이 사건은 몇 년도, 이런 암기력 테스트는 안 한다는 걸 명확히 보여주니 그 측면에선 학생들이 좋아한다. 또 남 생각을 억지로 떠다 먹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쓰게 하는 거니까 그 부분도 좋아한다. 하지만 괴로운 부분도 있다. IB과정은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한 네 생각은 뭔데?'를 계속 묻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반론 속에서 스스로 수정, 보완, 발전시키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 IB과정을 접한 학생들을 만나 보면 '엄청 힘들었지만, 그래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이라고들 말한다. 자기 머리를 쥐어 짜내서 뭔가를 해본 거다. 나는 그게 '교육'이고 '성장'이라고 본다. 암기식 교육이 문제라고 해서 공부시키지 말고 뛰어놀게 하자는 건 해답이 아니다."

-많은 자료와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엘리트 교육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많은 오해 중 하나다. 대구의 1, 2등급 하위권 학생들이 5, 6등급으로 올라선 것만 봐도 이미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나. IB는 각 지역별 개인화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요구한다. 제주 IB과정 고등학생 사례를 들면, 이 학생은 고춧가루를 빻을 때 씨를 넣고 빻는 것과 빼고 빻는 것의 맵기, 식감, 질감, 영양 등의 차이에 대한 비교분석을 자기 주제로 정했다. 재미는 있지만 이 과제 수행하느라 '실험실 지박령'으로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스스로도 '공부에 별로 관심도, 재주도 없다'던 학생이 가천대 바이오 전공에 합격했다. IB과정은 이런 학생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도 진보 쪽에서는 IB교육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제주 사례는 더 귀하다. IB과정을 제주에 도입한 사람은 이석문 전 교육감. 해직교사,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다. 그가 신기하게 본 건 IB과정을 택한 제주 국제학교였다. 돈 많은 사람들은 왜 아이를 저기에다 보낼까, 저걸 공교육에서는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 이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


IB, 교권회복과 공교육 정상화에도 도움이 된다

'진보 운동권 교육감'인 그가 이 소장에게 던진 다섯 가지 질문은 IB에 대한 온갖 우려의 압축판이다. '외제'라 불편하다, 귀족 엘리트 교육 같다, 기존에 잘하는 애들만 유리할 것 같다, 사교육이 폭발할 것 같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교사들이 해낼 수 있을까. 이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이 소장은 이 학교 사례를 두고 몇 년에 걸친 종단연구도 수행했는데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이를 알아본 제주대에서는 어떻게 하면 IB과정 학생들을 대학이 선발할 수 있을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대학도 IB과정을 알아보는 건가.

"맞다. 한때 기회균등선발, 지역균형선발을 두고 '기균충'이나 '지균충'으로 불러서 문제가 된 적 있지 않은가. 그런데 대학 내부 자료를 들여다보면 사지선다 충실하게 풀어서 정시로 들어온 아이들보다 지역이나 기회균등선발 아이들의 성취도가 더 높다. 서울대 같은 최상위권 대학부터 중하위권 대학까지 다 그렇다. 객관식 문제 풀이에 능한 아이들이 실제로는 가장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거, 대학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좋다, 나쁘다 보다 어쩌면 무서워서 못 하는 게 아닐까. 공정성 문제다.

"그래서 지역적 이슈를 개별적 주제로 업그레이드해나가는 과정을 평가한다는 게 중요하다. 제주 국제학교 학생 절반 이상이 서울 강남 아이들인데 탐구주제는 감귤 농사, 4·3사건 이런 거다. 그리고 처음 아이디어 제출 때부터 보완, 수정 과정을 다 확인하고 평가한다. IB과정을 도입한 한 외고에 가보니까 보고서에 쉼표 찍은 거 하나까지 이게 무슨 의미냐고 묻고 답하더라. 학교에서 1차 평가하고 관련 자료를 온라인에 올리면 외부에서 2차 평가한다. 이런 환경이면 자기가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건 말문이 막혀서 못 하게 된다."

-선생님들의 계속적인 피드백이 필수다. 현장 선생님들의 업무부담은.

"요즘 우리 사회 화두 중 하나가 바로 '교권회복' 아니었던가. IB는 현장 탐구를 중시하기에 결국 현장 교사들의 교권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IB과정은 낯선 것이라 교사들도 당연히 연수를 받아야 하고, 또 그 교사가 IB학교에 오래 있을 수 있도록 인사 등에서 배려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려면 행정 업무도 줄여줘야 한다."


한국형 IB 만들기, 그게 최종 목표

물론 언제까지나 해외 IB를 들여와 쓰자는 건 아니다. IB를 통해 논술, 탐구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평가되는지 충분한 경험과 합의가 쌓이면 IB과정과 같은 시스템을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면 된다. 그게 이 소장의 궁극적 목표다. 2019년 IB가 시험 가동에 들어가면서 이범 교육 평론가, 박하식 교장, 홍영일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교육팀장 등과 함께 'IB를 말한다'는 책을 내놨는데, 이들과 함께 한국판 IB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후속작을 준비 중이다.

이 소장이 이렇게 열혈 IB 전도사가 된 건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다. 바로 큰딸. 한국의 공교육은 딸을 '수포자'라 불렀는데 IB과정은 "계산은 느려도 수학적 사고방식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 딸은 대학에서 수학을 복수전공하더니 지금은 글로벌기업에서 IT기업 평가 업무를 하고 있다.

이 경험은 다른 눈을 뜨게 해줬다. "우리 딸과 달리, 재능이 발견될 기회를 잡지 못한 아이들이 그간 얼마나 많았을까"라는 거다. "좋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한국에서 되겠어?"라는 코웃음, 조롱, 비아냥, 비판,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이 소장이 지금까지 IB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는 이유다.

조태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