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 차마 말 못 한 만행... 5·18 성폭력 피해자들, 처음 증언대 섰다

입력
2024.09.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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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모임, 44년 만에 처음 공식 석상에 
군에 끌려간 고3, 성폭행당한 임신 3개월
'국가 폭력' 인정됐지만... 정부 조치 미비


“그때 저는 스물일곱이었고, 임신 중이었어요. 그 이후론... 군복만 봐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최경숙씨)

1980년 5월의 광주.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이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고 폭력 진압을 일삼았다. 시간이 흐르며 신군부와 계엄군 만행의 진상이 밝혀지고,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보상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숨을 죽이며 자신들이 당했던 폭력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이들이 여전히 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첫 공식 석상

바로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다. 사건 발생 44년 만에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직접 증언했다.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15명으로 구성된 증언 모임 '열매'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을 열었다. 이날 자리엔 피해자 10여 명이 직접 참석했다. 일부는 마스크와 스카프로 얼굴을 꽁꽁 가렸지만, 다들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추미애 박은정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3명도 참석했다.

계엄군의 성범죄가 공론화된 건 6년 전. 앞서 2018년 피해자 김선옥씨의 첫 번째 '미투'를 계기로 정부 조사단이 꾸려졌고,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5·18조사위)는 올해 4월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놓았다.

이날 마이크 앞에 선 피해자 네 명은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 그리고 일평생을 견뎌온 트라우마를 어렵게 털어놨다. 당시 열아홉 고3이었던 최미자(62)씨는 "사람들이 도망치길래 같이 뛰다가 군인에게 잡혔다"며 "머리채를 잡힌 채 배 등을 구타당했고, 군인 여러 명이 달려들어 몸을 만지고 어깨와 폐를 (도검으로) 찌른 뒤 버리고 갔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성추행을 당할 때 생긴 흉터가 드러날까 치마를 입지 못했고,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결국 이혼에까지 이르렀다며 눈물을 보였다.

당시 임신 3개월 차였던 최경숙(71)씨는 "광주 시내를 방문하던 길에 군인들이 갑자기 차를 세우라 했고, 뒷좌석에서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하혈을 심하게 해 확인해보니 아이가 유산됐고, 결국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이날 피해자들은 "수치심 때문에 쉽게 나설 수 없었고, 국가적 사건 속에 자신들이 겪은 성범죄가 상대적으로 '사소한 일'로 치부돼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부에 후속 조치 촉구"

이날 피해자들은 정부의 뚜렷한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5·18조사위의 성폭력 부문 팀장을 맡았던 '열매'의 윤경애 간사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40여 년 내내 이어졌고, 조사위에서 대통령실에 (진상규명 결정을) 보고까지 올렸으나 3개월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며 "오늘 이 자리는 다음을 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남아 저항하다 연행돼 조사 도중 성폭행을 당한 김복희(63) 열매 대표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지만,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삶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촉구했다.

이유진 기자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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