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한 달에 1,000킬로와트시(kWh) 넘게 전기를 쓰는 '슈퍼유저' 가구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을 많이 쓰는 가구에 절전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애초 도입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가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본보가 한국전력을 통해 제출받은 '최근 5년 동안 연도별 슈퍼유저' 현황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1,000kWh를 초과해 전기를 사용한 슈퍼유저는 총 9,527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8,520가구) 11.8% 늘어났다.
한전은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7, 8월)과 겨울철(12~2월)에 한해 기존의 누진제 3개 구간에 더해 1,000kWh 초과 과소비 구간을 대상으로 최고 요율을 적용하고 있다. 주택용 고압 요금을 적용받는 가구는 1kWh당 736.2원을 적용받는데 이는 최저요율(120원)의 여섯 배에 달해 슈퍼유저가 될 경우 적어도 월 30만 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전기를 너무 많이 쓰지 않게 하자는 정책 취지와 달리 전기를 과소비하는 가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여름철 기온이 가장 높은 8월 기준 슈퍼유저 가구는 △2020년 1만1,433가구 △2021년 5만4,087가구 △2022년 3만4,619가구 △2023년 4만1,421가구 등으로 늘었다. 올 8월 통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유례없는 폭염을 기록했던 만큼 8월 슈퍼유저 가구 수는 역대 최대치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16년 전기요금 누진제도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하면서 전력 과소비 가구의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슈퍼유저 요금제를 도입했다. 문제는 더 이상 이 같은 제도가 주택용 전기 사용을 억제하는 신호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서울에 사는 4인 가구가 슈퍼유저가 되려면 여름 내내 24시간 집 안 에어컨을 모두 켜놔야 한다"며 "이런 가구는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할 능력과 의사가 있어서 100만 원 넘게 전기료가 부과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 비중이 늘면서 소득 수준은 높지만 전기 소비량이 적은 1인 가구에만 유리한 방식으로 제도가 작동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누진제 도입 당시만 해도 전력 사용량과 소득 수준은 비례한다고 보고 서민층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됐지만 오히려 소득은 낮지만 가구원이 많은 가구에는 누진제 부담이 크게 작용하게 된 것이다.
유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눈에 띄게 완화하는 이유가 1, 2인 가구의 증가 탓"이라며 "살림이 넉넉한 사람들이 원가 이하의 싼 전기를 쓰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폭염으로 전기요금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주택용 전기요금 판매 단가는 여전히 원가 미만"이라며 "원가도 받지 못하는 전기요금이 정상화되는 것이 우선이며 이후 취약 계층 부담을 완화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