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통신비 부담이 커지는 원인은 통신요금 탓일까, 단말기 가격 탓일까.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논쟁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정부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폐지 방침을 밝힌 이후 후속 조치를 두고 이해관계자 간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30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가구별 통신비 소비지출 구성비 최근 추이를 분석해보면 2019년 5.0%에서 2022년 4.9%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가구당 통신비 평균 지출 금액도 2019년 12만3,006원에서 지난해 4분기 12만9,000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 정부가 몇 년째 통신비 인하를 위해 이동통신사의 요금 체계 개편을 압박하거나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기 출시 등을 독려해도 정책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국내 통신비 수준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부족해 정부의 통신비 경감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통상 '통신비'는 '통신요금+단말기 가격'을 더한 값을 일컫는데 다수의 소비자가 단말기를 할부로 구입해 요금제와 연동하니 매달 내는 통신요금이 증가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비싸다고 느낀다는 것.
앞서 김용재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가 27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보면 갤럭시 S24 울트라와 아이폰15 프로(각각 256GB 기준) 등을 대상으로 주요 10개국(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통신사 최적 요금제를 일평균 소득을 감안해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세 번째로 낮았다. 하지만 단말기 구입 비용과 이동통신요금을 더하면 한국 통신비 순위는 6~8위로 떨어져 비싸졌다. 이에 김 교수는 "이동통신요금은 주요 국가와 비교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단말 구입비를 더하면 부담이 커진다"며 "그럼에도 통신비 부담 논의가 있을 때 제조사들은 항상 뒷전에 머물면서 잘 모른다고만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통신업계에선 통신요금 인하 책임을 통신사에 더 많이 묻는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5G 품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좋고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도 많은 편인데 통신요금 자체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면서 "단말기 가격이 더 부담된다는 점이 통계로 명확하게 나타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단말기 제조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원자재 비용 증가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도입으로 플래그십 단말기 가격이 올라간 건 맞지만 글로벌 출시 가격 편차가 크지 않고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중저가 단말기도 적극 출시했다는 것. 단말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국 시장의 경우 소비자들이 플래그십 모델을 유난히 좋아해 중저가 모델을 내놔도 관심 자체가 적다"고 설명했다.
국가 간 통신요금을 단순 비교해 정책을 설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 통신비 인하의 실질적 선택지인 알뜰폰이 분석에서 빠진 데다 나라마다 통신 시장 상황의 차이가 커서 정확한 요금 비교가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또한 통신업계가 단통법 폐지 후 단말기 지원금 경쟁으로 마케팅 비용이 증가할 것을 우려해 제조사에 책임을 넘기려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단통법 폐지 시 통신과 단말기 유통을 분리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통신비 부담 원인'을 따지는 게 업계에서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통신사와 제조사의 줄다리기가 과열되면서 정부와 국회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현 의원은 토론회에서 "정부가 단통법 폐지 방향성을 얘기한 후에도 후속 조치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국감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해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단통법 폐지를 위해 국회 논의를 지원하며 단말기 유통 구조도 조정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