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 세계 9위 한국, 왜 환율 급등락은 피하지 못하나

입력
2024.10.01 04:30
21면
<22> 막대한 외환보유고에도 환율 급등 이유
글로벌 외환시장 대비 외환보유고 미미
외환위기 트라우마와 투자자 심리 변동
수출 중심 경제 구조, 환율 변동성 영향
평화로운 시기에 꾸준히 달러에 투자하고
환율 급등 때 팔아 저평가 원화 자산에 투자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투자법 따라 해 보자"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2주에 1회 연재합니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은행의 ‘2024년 8월 말 외환보유액’ 통계를 보면, 한국이 4,159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9위 수준의 외환보유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2022년 말이나 2020년 연초 같은 시기에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하루에 50원 혹은 100원의 상승을 기록하는 등 매우 큰 변동성을 보인다. 외환보유고를 세계 톱레벨로 쌓아도 환율의 출렁거림은 왜 멈추지 않을까.

①글로벌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7.5조 달러

막대한 외환보유고에도 외환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외환시장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22년 국제결제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 외환 거래량은 7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참고로 세계 외환 거래량의 22.7%는 유로에 대한 달러 거래로 22.7%를 차지하고, 2위는 달러에 대한 일본 엔화 거래로 13.5%에 이른다.

외환시장의 규모가 이렇게 크다 보니,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는 큰 영향을 발휘하기 힘들다. 특히 한은이 발표한 ‘2024년 2/4분기 중 외국환은행의 외환거래 동향’에 따르면, 하루 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677억8,0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세계 11위 수준으로, 한국의 경제력 규모에 비해 많이 낮은 순위라 생각된다.

따라서 경제력 및 최근 해외 투자 붐 등을 감안할 때, 외환거래 규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정책 당국의 시장 영향력이 제약될 수 있음을 뜻하며, 특히 미국 등 선진국 정부가 과거보다 훨씬 무역수지에 신경을 쓰고 있는 흐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②외환위기 트라우마도 큰 영향 미쳐

그럼에도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2024년 6월 말, 우리나라의 순대외 금융자산은 8,585억 달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순대외 금융자산이란, 우리 국민이 보유한 해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부채를 뺀 것이다. 참고로 6월 말 기준 대외 채무는 6,583억 달러로 적지 않지만, 대외 채권이 1조397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심해도 될 수준인 것 같다. 대외 채권 이외에 각종 금융자산의 투자 규모는 1조3,554억 달러에 달하니, 한국은 이제 해외에서 다달이 나오는 이자와 배당금이 두둑하게 쌓이는 ‘자본 수출국’이 된 셈이다.

해외에 막대한 자산을 쌓아 놓은 자본 수출국임에도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큰 직접적인 이유는 ‘양떼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는 가운데 많은 투자자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으니 “외국인 투자자에게 맞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릴 때 개에게 물렸던 사람들이 귀여운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듯, 한국 투자자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할 때마다 달러를 사기 위해 일제히 뛰어간다.

아래 [그림]에서는 2001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팔아 치울 때마다 환율이 급등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판 돈을 달러로 환전할 때 환율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게 문제다. 왜 이게 문제냐 하면,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국내로 가져오는 수요도 늘어나며 시장 환율이 균형을 찾는 게 정상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100원이던 2021년 초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2022년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을 때, 달러당 300원의 차익이 발생하니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게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2022년 4분기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71억6,000만 달러의 순매수를 기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환율이 급등하고 코스피 지수가 2,100포인트까지 내려가는 데도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 매수를 멈추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모든 투자자가 이렇게 행동하진 않는다. 국민연금처럼 자산배분을 중시하는 장기 투자자들은 환율이 상승하며 해외 자산 평가액이 높아질 때는 해외보다 국내 자산에 더 많은 자금을 배정한다. 이런 행동을 리밸런싱이라고 부르는데, 환율 및 자산가격의 급등락으로 특정 자산의 비중이 목표한 수준을 넘어설 때는 이 자산에 대한 매수를 중지하거나 매도하는 일을 뜻한다. 2021년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매도하고 해외 투자를 늘린 것이 큰 이슈가 됐는데, 글로벌 연기금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적인 리밸런싱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에 환율이 연동되는 일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기대해 본다.

③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도 영향 미쳐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높아지더라도,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가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외국인의 주식 매매와 한국 수출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수출경기가 나빠지기 전부터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가 촉발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2023년처럼, 수출 회복이 본격화하기 전에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가 출현하는 일도 잦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수출기업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수출 경기가 나빠진다 싶을 때에는 신속하게 투자 포지션을 축소하려 든다. 그리고 이와 같은 행동은 예민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며, 연쇄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다.

④한국 외환시장의 특성을 활용하는 투자 방법은 없을까?

이상의 설명을 듣노라면, 한국 외환시장의 특성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본다. 국내 투자자들의 ‘외환위기 공포’가 현재진행형인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수출 경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외환시장의 특성을 투자에 활용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는 독자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두 가지의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평화로운 시기에 달러 예금 혹은 달러화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에 적립 투자하는 것이다. 적립 투자를 권하는 이유는 환율의 절대 레벨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꾸준히 달러 예금을 모아가다 2022년이나 2008년처럼, 환율이 한 해에 몇백 원 이상 튀어 오를 때 달러를 매도해 저평가된 원화 자산을 매수하면 큰 성과를 누릴 수 있다.

두 번째 전략은 이미 상당한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보유 자산의 절반을 달러화로 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1억 원을 운용하는 가계가 한국 주식에 5,000만 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5,000만 원을 달러화 표시 외화예금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식이다. 그러다 2021년처럼 한국 주식가격이 급등할 때는 차익을 실현해 미국 주식 혹은 외화예금으로 이동하고, 반대로 2022년처럼 환율이 급등할 때는 달러를 팔아 한국 주식을 저가 매수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정 비율을 달러로 유지하면, 금융위기가 올 때마다 점점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이 방법은 국민연금의 투자를 모방한 것이다. 1988년 설립 이후 국민연금이 연 5.92%라는 탁월한 성과를 거둔 데에는 이와 같은 투자 전략이 적잖은 기여를 한 바 있다. 부디 많은 독자가 국민연금의 투자를 모방함으로써 재정적 자유를 누리기를 기대해 본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