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베껴" 위조 5년 새 750만 점인데…특허청 수사 인력은 '20명'뿐

입력
2024.10.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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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봉 의원실, 특허청 위조품 단속 현황 분석
SNS, 블로그 타고 위조범죄 '기업형'으로 발전
2019~2023년 위조범죄 형사입건 4배 증가
같은 기간 기술경찰 수사인력은 제자리걸음
포렌식 담당자도 단 '2명'뿐..송치까지 9개월
"특허청 수사 인력 보강 절실한 시점에 왔다"


시작은 블로그였다. 자칭 '인플루언서' 박모(35)씨는 2020년부터 유행하는 패션 의류를 한껏 걸친 사진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다. 블로그 누적 방문자를 늘려 인지도를 높인 박씨는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허○○○'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뒤 자신들의 브랜드를 붙인 모방품을 팔았다. 그런 모방품 판매도 잘되자 단골 손님들을 상대로는 샤넬 등 명품 브랜드 디자인에 로고까지 베낀 위조품을 진품인 것처럼 속였다.

박씨가 모방, 위조한 제품만 2만여 점. 정품 가격 기준 344억 원어치였다. 결국 그는 디자인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박씨 사례로 최근 짝퉁 범죄의 규모와 방식이 암암리에 동대문, 남대문시장에서 중국산 짝퉁을 들여와 유통하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블로그, SNS 등으로 유명해진 뒤 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나타난 '기업형 모방 위조 범죄'로 발전한 것이다.



위조범죄 형사입건 5년 사이에 4배 증가


실제 최근 위조품 제조, 유통이 늘어났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특허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위조품 단속 현황(2019~2023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위조품 적발로 압수한 물품만 756만 점에 달했다. 품목별로 보면 의류가 67만8,138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화장품류(18만1,782점), 장신구류(6만1,672점), 가방류(4만3,039점) 등이 이었다. 명품 거래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유명 브랜드 위조품이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위조품을 다시 우리 같은 거래 플랫폼에 되팔려는 소비자가 늘어날 정도"라고 했다.

특히 디자인 모방, 위조 범죄로 특허청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기술경찰)에 형사입건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2019년 104명이던 형사입건 수는 2020년(169명), 2021년(197명)을 거쳐 2022년에는 222명이 되더니 지난해에는 356명으로 껑충 뛰었다. 5년 사이에 네 배 가까이 늘었던 것이다.



수만 점 압수품 운반도 수사인력 몫...포렌식 담당자는 2명밖에


문제는 늘어나는 모방, 위조 범죄 규모에 비해 특허청 수사 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디자인 및 기술 위조 범죄를 담당하는 특허청 기술경찰 정원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스무 명뿐이었다. 이들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위조 범죄를 단속하고 수사해야 한다. 위조 범죄 특성상 제품을 모두 거둬들이고 품목, 브랜드 등에 따라 개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압수품이 수만 점에 이르는 경우에는 수사 인력이 모두 사나흘씩 동원된다. 압수품 숫자를 하나하나 세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또 위조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알기 위해선 피의자의 휴대폰, 노트북 등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특허청 기술 경찰 내 포렌식 전문수사관은 두 명이 전부다. 비슷한 수사를 하는 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 포렌식 전문수사관이 216명이나 되는 것과 비교하면 민망한 숫자다.



기술경찰, 송치까지 9개월..."인력 보강 절실해"


이렇다 보니 수사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허청 기술경찰이 형사입건 후 송치까지 걸린 시간은 2021년에도 무려 7.8개월이었는데 지난해에는 9.3개월로 늘어났다. 수사 인력은 그대로인데 위조 범죄가 늘어나니 당연한 결과다. 경찰의 관련 사건 처리 기간이 지난해 평균 63일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송 의원은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이른바 짝퉁 제품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 행위에 엄정 대응할 수 있게 특허청 수사 인력의 보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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