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2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추계기구)를 만들고 의사의 적정 인원을 추계하는 분과는 위원 절반 이상을 의사 단체가 추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의사 단체 반응은 냉랭했다. 추계기구 신설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해놓고 의료계에 기구 참여를 요청하는 건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논리다. 위원 과반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의사 증원 규모의 최종 결정권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실 제안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추계기구는 의대 증원 사태와 무관하게 필요한 장치이지만 사후약방문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의료인 적정 인원을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온 터라 과학적으로 추계할 기구는 필요하다"면서도 "2025년도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추계기구를 만들자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사계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30일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인 입장을 설명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의협 관계자는 "현재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는 잘못된 정책을 먼저 멈춰야 나머지 논의가 가능하다"며 '내년 증원 전면 중단' 입장 고수를 시사했다.
의협 전현직 간부들은 정부 제안에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순서가 뒤바뀐 땜질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추계기구를 신설하고서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와서 면피를 위해 만든다고 해결이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 "이제라도 (증원을) 철회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병욱 의협 중앙대의원은 보정심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그는 "추계기구는 추계 결과를 보고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기능만 있을 뿐, 최종 결정은 의사결정기구(보정심)에서 하도록 돼 있다"며 "의사들 요구대로 추계기구는 만들어준다고 해도,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결정하는 상위기구는 따로 있으니 추계기구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통령실 설명에 따르면 추계기구는 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분과별 위원회로 구성되며 각 위원회는 전문가 10∼15명이 참여한다. 의사 분과의 경우 의대 졸업생 수, 한국 인구 구조, 건강보험 자료 등을 토대로 향후 필요한 의료인력을 추산하게 된다. 정부는 각 분과위원회 전문가 추천권의 과반을 각 직역단체에 주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