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오찬 중 쓰러져 숨진 근로자, 사망 직전 주 62시간 근무… 법원 "산재" 인정

입력
2024.09.30 04:30
평소 30% 초과 근무·사내 주요 지위
경영난 속 입찰 최종 탈락 상황 고려
"과로·스트레스, 뇌동맥류 악화·파열"

업무상 오찬 중 갑자기 숨진 노동자의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뇌동맥류(뇌혈관의 일부가 약화돼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 지병이 있었던 노동자의 담당 업무와 근로 시간 등을 종합해볼 때 과로와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라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29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이주영)는 A(사망 당시 46세)씨 유족이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2일 원고 승소 취지 판결했다.

A씨는 2003년부터 B사에 입사해 토목분야 현장기술지원 등 업무를 담당했다. 2021년 6월 업무 유관 정부 부처 공무원과 점심을 먹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이틀 만에 사망했다. 사인은 지주막하 출혈에 의한 뇌사였다. 유족은 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청구했지만, 공단 측은 업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부했고 유족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사망 직전 겪었던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기존 뇌동맥류를 자연 경과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시켜 파열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된다"며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사의 경영난으로 가중된 업무 강도와 정도 등도 판결 근거로 삼았다. A씨는 쓰러지기 전 일주일간 평균 업무시간이 62시간에 달했다. 재판부는 "쓰러지기 전 12주간 평균 업무시간 46시간 30분보다 30% 초과했다"면서 "발병 전 단기간 업무상 부담이 증가해 뇌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주는 육체·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A씨가 쓰러질 무렵 B사는 공사비가 6,000억 원 넘는 입찰계약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었고, A씨는 이 프로젝트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각종 설계, 현장 기술 지원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돼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가 쓰러지기 바로 전날 또 다른 입찰 절차에서 최종 탈락 통보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회사가 경영난에 처해 있었는데 (탈락) 결과는 고인에게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뇌동맥류 파열과의 개연성을 인정했다.

이 밖에도 △쓰러질 당시에도 업무 관련 식사를 하던 중인 점 △회사와 동료들도 업무상 부담이 과도하다고 인정한 점 △고혈압이나 흡연, 과도한 알코올 섭취, 비만 등 개인적 위험요소는 발견되지 않은 점 등도 고려됐다.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이달 14일 확정됐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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