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독대(獨對)

입력
2024.09.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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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독대(獨對)는 손에 꼽힐 만큼 이례적인 것이었다. 기록상 나오는 독대는 말 그대로 배석자 없이 단둘이만 만난 것이다. 보통은 왕의 비서격인 승지나 사초를 쓰는 사관이 배석해 일상에서 생각하는 밀담과는 차이가 있다. 조선왕조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통치, 또는 왕에 대한 형식적 견제장치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최고지도자와의 독대 여부는 권력의 척도나 다름없다.

□ 조선 효종이 우암 송시열과 북벌을 논의한 기해독대(1659년 3월 11일)가 유명하다. 청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려 했지만 송시열은 이를 사실상 반대했다. 창덕궁 희정당에서 나눈 대화였다. 명분론에 힘을 싣는 듯하면서도 내치가 더 시급하다는 취지로 제동을 걸었다는 게 정설이다. 효종이 죽고 15년쯤 뒤 예송논쟁 때 송시열이 내용을 공개했으니 진위를 다툴 다른 ‘버전’은 없다.

□ 과거정권 시절 대통령은 안기부장, 국정원장 등과의 독대를 통해 정적을 관리했다. 밀실정치 폐해를 없애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 ‘독대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국정원장 독대는 외교안보수석이, 총리 독대는 청와대 비서실장, 감사원장 독대는 민정수석이 배석토록 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의사소통의 공적시스템을 표방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거침없이 독대를 즐기는 식이었다.

□ 대통령의 독대는 강력한 통치수단이자 정치적 카드가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독대에 인색했다. 2010년 한나라당 박 전 대표는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며 결별을 통보했지만 2014년 7ㆍ14 전당대회에서 김 의원은 당대표가 됐다. 다음 날 청와대에서 진행된 축하 자리. 희한한 자리 배치가 지금도 회자된다. 대통령 맞은편에 득표 3위를 한 김태호 최고위원이 앉아 있고, 김 신임 대표는 대통령과 나란히 옆에 있다. ‘박근혜 대 김무성’이 마주 앉는 구도가 원천봉쇄된 셈이다. 여당 대표의 독대 요청이 거부된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민심 전달을 예고한 한동훈 대표에게 인사말 기회조차 없었으니 당정소통보다 ‘윤심’만 드러난 셈이 됐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