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개 전성시대… ‘자원 주권’ 활용에 나선 지자체들

입력
2024.09.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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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개·삽살개·풍산개 등 국제품종 등재
육종 연구… 매개 치료, 관광 상품 등 각광
“활용 가치 무궁무진,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바야흐로 한국 토종개의 전성시대다. 전국 방방곡곡에 뿌리를 둔 개들이 잇따라 국제 품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다. 반려견 1,500만 시대를 맞아 지자체와 민간이 토종개의 종자 주권을 지키면서 이를 활용한 지역 관광·문화·경제 활성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전북 임실군 오수개연구소는 오수개를 연구한 지 30년 만인 지난 6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공식 품종으로 등재했다.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은 가축 유전자원을 이용해 이익이 생기면 해당 국가에 돌려주기 위해 만든 제도다. 현재 199개 나라 39축종(畜種) 1만5,188계통의 유전자원이 등재돼 있다. 이 중 한국 토종개는 2012년 진돗개·제주개·동경이에 이어 올해 오수개·불개·삽살개(고려개·바둑이)·풍산개까지 총 7개 품종(9계통)이 무더기로 등재됐다.

주인을 구하고 죽은 오수개 이야기는 고려시대 문인 최자가 1254년에 쓴 ‘보한집’에 수록됐다. 오수개연구소는 1,000여 년 전 실존했던 고려개를 근간으로 2008년 오수개를 복원했다.

국제 품종 등재로 임실군의 반려동물 성지 프로젝트도 탄력이 붙었다. 오는 2026년까지 400억 원을 들여 오수면에 반려동물 캠핑장, 전시관 등을 만드는 사업이다. 군은 2030년 세계반려동물산업엑스포 유치도 추진한다.

예부터 ‘귀신 쫓는 개’로 알려진 삽살개는 천연기념물 368호다. 요즘은 경북 경산시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 중이다. 경산시는 2012년 국비 등을 들여 세운 삽살개육종연구소와 삽살개 순수 혈통을 육성하기 위해 개체별 DNA 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있다. 관광객은 경산에서 삽살개 산책·훈련 등 각종 교감·체험을 할 수 있다. 연구소는 학교와 병원·지자체 등에 삽살개를 보내 심리 치유를 돕는 이른바 동물 매개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전남 진도군은 충견의 대명사인 '진도개(천연기념물 53호)'의 고장이다. 2012년엔 5월 3일을 ‘진도개의 날’로 정했다. 이후 매년 5월 첫째 주 주말에 열리는 '진도개 페스티벌'은 최대 4만 명 이상 몰리는 진도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진도 인구(8월 기준 2만8,690명)보다 많은 관광객이 오롯이 진돗개 ‘실물 영접’을 위해 진도를 찾는 셈이다. 진도군은 올해 '제1회 대한민국 우수 진도개 페스티벌'도 함께 개최하는 등 외연을 넓히고 있다.

2005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에 풍산개(천연기념물 386호) 마을을 조성한 이기운(70) 대표는 30년째 풍산개 보존·관리에 힘쓰고 있다. 풍산개의 국제 품종 등재도 이 대표의 공이 컸다.

이 대표의 아들 이상협(40)씨는 풍산개를 테마로한 로컬 브랜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씨는 2021년 반려동물 동반 카페를 열고 풍산개 모양 쿠키나 샌드위치·케이크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이씨는 “여건상 개를 키우기 어려운 방문객은 풍산개 사진·이미지가 그려진 달력·엽서·머그컵 등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김승창 연구사는 “토종개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넘어 문화·관광·레저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며 “당장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정부와 지자체·민간이 함께 다양한 활용 사례를 축적·공유하는 한편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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