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을 받고 사망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를 암살한 데 이어 헤즈볼라의 수장까지 사살하면서 이제 전 세계의 눈길은 이른바 '저항의 축'(반(反)이스라엘·미국 진영)을 이끄는 중동 맹주 이란에 쏠리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면서 '저항의 축' 결집을 촉구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28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전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대한 정밀 공습으로 나스랄라가 사망했다"며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의 남부 전선 사령관 알리 카라키 등 지도부 일부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스랄라가 더 이상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헤즈볼라의 전략적 리더인 나스랄라는 재임 동안 수많은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하고 테러 활동을 실행한 책임이 있다"고 부연했다.
헤즈볼라도 수장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헤즈볼라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나스랄라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사망했다"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해, 레바논의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전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나스랄라는 32년간 헤즈볼라를 통치하고 있는 인물로, 헤즈볼라를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된 비국가 행위자'로 키워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번 공습으로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 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IRGC 산하 쿠드스군의 레바논·시리아 지역 사령관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스라엘은 전날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에 위치한 헤즈볼라 본부를 정밀 공격했다. IDF는 전날 공습 이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의 주거용 건물 지하에 위치한 헤즈볼라 본부를 공격했다"며 "이스라엘 전투기가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미사일 부대 사령관 무함마드 알리 이스마일과 부사령관을 비롯해 다른 사령관과 테러리스트까지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튿날인 이날 새벽에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비롯한 곳곳을 강타, 공습을 이어나갔다. IDF는 이날 "추가 공격으로 헤즈볼라 은닉 무기고로 추정되는 민간 건물을 추가로 폭격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까지 최소 6명이 사망하고 9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충돌은 전면전 직전까지 치달은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17, 18일에는 레바논 전역에 '무선 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폭발' 테러를 감행했고, 23일에는 '북쪽 화살들'이라는 작전명으로 헤즈볼라 시설 약 1,600곳을 타격, 사흘간 공습을 이어 갔다.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이후 최대 공습이다.
헤즈볼라 지도부에 대한 표적 공격도 이어지고 있었다. 24일에는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가, 20일에는 '헤즈볼라 2인자'로 불리던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이 사살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의지를 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6일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 취재진에게 "모든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헤즈볼라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미국 프랑스 등이 '이스라엘·헤즈볼라 21일간 휴전' 구상을 담은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제 이란의 움직임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됐다. 이란이 배후에서 지원하던 '저항의 축'의 핵심 인물인 헤즈볼라의 수장이 사살되면서, 맹주인 이란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1일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차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 중인 하마스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기도 했다. 이란은 당시 보복을 천명했지만, 아직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란은 나스랄라 사망 이후 이스라엘을 규탄, '저항의 축'의 결집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을 통해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 정권)의 테러리스트 집단은 가자에서 1년 동안 지속된 전쟁 범죄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며 "이 지역의 모든 저항 세력이 헤즈볼라 편에 서서 지원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레바논과 헤즈볼라 편에 서서 억압적이며 사악한 정권에 맞서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하메네이는 현재 신변 안전을 위해 보안이 강화된 안전한 모처로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사살에 대한 후속 조치를 결정하기 위해 이란이 역내 다른 세력들과 접촉을 해나가고 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