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에 따른 여당 몫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의 연임안이 그제 국회에서 부결됐다. 야당 추천 이숙진 전 여성가족부 차관의 인권위 상임위원 선출안만 통과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를 무시했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더불어민주당이 재반박하면서 국회 본회의장은 난장판이 됐다. 통상대로 국회 추천 몫 인사는 여야 합의를 거쳐 본회의 안건으로 올리는 게 관행이다. 때문에 여야가 각각 추천한 인사는 대체로 가결시키는 전통이 있음에도 민주당이 돌연 파기했으니 이번 국회 파행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위한 여야의 신뢰를 허문 것은 ‘거대야당 횡포’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본회의장 여당 의석에선 “사기당했다”며 “사기꾼~”을 연발했고, 야당 의석에서 대통령 이름을 갖다 붙인 “사기꾼~” 구호가 난무해 초등학생 보기에도 부끄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야바위꾼, 양아치들”이란 말도 튀어나왔다.
민주당 입장이 돌아선 건 의원총회에서 인권위원 출신 서미화 의원이 “한 위원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긴급구제조치를 날치기 기각시켜 인권위를 초토화시켰다”며 문제를 호소한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검사 출신인 한 위원은 차별금지법과 이태원특별법에 반대했고, 이태원 참사를 “피해자들이 핼러윈데이를 즐기려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이란 소수의견을 내 인권위원으로서 부적절하단 지적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애초 사안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채 여당과 합의하고, 뒤늦게 ‘자율투표’로 부결을 방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많은 원내 지도부는 뭘 했단 말인가.
결국 국민의힘은 인권위원 임명권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민주당 추천의 이숙진 후보자에 대한 임명보류 건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야당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는 무는 불통과 대치만 강화시킨 꼴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서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여야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할 신사협정이다. 합의 파기가 국회에서 ‘문화’로 자리 잡는 한 서로를 믿지 못해 어떤 협상도 성과를 내기 힘들어진다. 궁색한 꼼수와 실책에 국민을 또 한 번 실망시킨 민주당은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