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영토 포기 강요자” vs 트럼프 “항복 아닌 구명”… 미 대선 앞 우크라이나 신경전

입력
2024.09.27 16:23
유엔총회 계기 방미 젤렌스키와 각자 회담
북부 격전지 동유럽 이주민 유권자 쟁탈전
바이든, 장거리미사일 허용 대신 거액 지원

11월 미국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 후보 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책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선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주(州)를 민주당 인사들과 함께 찾으며 대립이 더 첨예해졌다.

선거철 ‘미국의 이익’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워싱턴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영토 포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제안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제안과 동일하다”며 “평화를 위한 제안이 아니라 위험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항복 제안”이라고 비판했다.

해리스가 겨냥한 이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보하더라도 전쟁을 끝내는 편이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식으로 말해 왔다. 이에 해리스는 “우리는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침략자들에 맞서야 한다”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필요한 지원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종전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뉴욕 트럼프타워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종전 구상이 결국 우크라이나의 항복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생명을 구하는 게 내 전략”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이것은 내 싸움이 아니지만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부연했다.

경쟁자 해리스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을 트럼프 역시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면담을 요청했고 내일(27일) 아침 9시 45분쯤 트럼프타워에서 그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나는 그와 의견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항전 의지 표명 및 지원 요청을 예상하고 미리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편 젤렌스키

젤렌스키 대통령은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뉴욕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자국에 제공될 155㎜ 포탄을 생산하는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방문(22일)도 일정 중 하나였다.

문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향인 이곳 방문에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들만 동행했다는 사실이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25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민주당을 돕기 위한 분명한 대선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동·중서부 제조업 지대) 경합주의 동유럽계 미국인은 두 후보 모두 구애하는 유권자 집단이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냉전 때부터 공산주의 반대에 강경한 공화당을 다수가 지지해 왔지만, ‘친(親)푸틴’ 성향 트럼프가 등장하며 민주당에도 기회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부터 만났다.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을 러시아 영토 깊숙이 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게 그의 당면 과제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80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신규 지원 계획으로 그를 무마했다. 핵 보유국 러시아와 서방 간 직접 충돌 위험이 커지는 상황을 바이든이 우려해 왔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김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