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합병 비밀합의와 관련해 발생한 수백억 원대 지연손해금을 추가로 달라"는 소송을 걸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 최욱진)는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267억2,000여 만 원 규모의 약정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27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주식 매수 대금 원본에 포함되는 비용엔 지연손해금이 포함돼 있지 않아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고 설명했다.
분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었던 엘리엇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결정됐다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삼성물산은 1주당 5만7,234원을 제시했지만, 엘리엇은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 패소한 엘리엇은 항소했으나, 이듬해 3월 삼성물산과 따로 합의에 성공했다며 소송을 취하했다. 당시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성물산이 장래 다른 주주들에게 기존 제시가격을 초과하는 대가를 지급할 경우 엘리엇에도 초과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음이 추후 드러났다.
이에 삼성물산은 1주당 5만7,234원으로 계산한 주식매수대금, 그리고 당시까지의 지연손해금을 엘리엇에 지급했다. 이후 다른 주주들이 낸 소송에서 1주당 가격이 6만6,602원으로 확정되자, 2022년 5월 그 차액만큼의 주식매수금 747억 원을 엘리엇에 추가로 줬다.
엘리엇은 그러나 삼성물산이 2022년 5월까지의 지연손해금도 함께 물어내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다. '삼성물산이 다른 주주들에게 지급한 초과금액엔 모든 손실·비용·책임에 대한 보상·가치 이전 등을 포함한다'는 합의서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삼성물산 손을 들어줬다. 주식 매매 대금만을 대상으로 한 합의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취지다. 만약 삼성물산이 지연손해금까지 줘야 한다면, 다른 주주의 매수가격이 기존 제시가격과 동일하게 결정되는 경우에도 지연손해금을 매번 지급하게 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정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엘리엇 청구 금액의 7%(690억 원)를 인용했고, 정부는 이에 불복해 판정 취소 소송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