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사태는 자본시장 선진화의 시금석

입력
2024.09.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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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금융위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하고 여야 모두가 중요하다며 지원하고 있는 한국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밸류업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금융위가 제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3가지 정책분야 중 '주주가치 기업경영 확립'은 오너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글로벌 스탠더드인 주주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기업들은 오너의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차입 경영을 통해 성장하여 왔다. 뒤늦게 생긴 주식시장에 기업공개를 하였지만 여전히 소액 지분을 가진 오너에 의해 사실상 이사회가 구성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9월 12일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영권이라는 용어는 말이 안 된다. 경영을 하는 자는 의무와 책임을 가질 뿐 권리는 없다. 권리를 갖는 유일한 존재는 주주"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로 보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혹평하였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주주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오너가 확보하고 있는 경영권을 주주에게 이전한다는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와중에 터진 고려아연 사태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전형적인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공동 창업에 의한 공동 오너 체제에서 오너 양측 간의 합의에 의해, 고려아연 지배구조는 지분이 많은 오너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지분이 적은 오너가 경영에 참여한 점이다. 그러다가 오너 3세로 접어들면서 오너 간 경영권 확보를 위한 경쟁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먼저, 지분이 많음에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영풍은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와 협력하여 공개매수라는 강수를 두었다. 이에 지분이 적지만 경영에 참여해온 고려아연의 경영진은 이를 적대적 M&A로 규정하고, 그 부당함과 방어책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태에서 MBK 참여가 갖는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소액 주주이고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사모펀드에 출자하여 금융전문가들에게 투자를 위임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모펀드들은 전통적인 주식매매보다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전략을 주로 구사한다.

이러한 투자전략은 기업 경영활동에서 발생하는 기업가치 저평가 상황에 주목한다. 전후 사정이 어떻든 간에 고려아연의 경영진이 큰 금액을 핵심 사업 활동과 관련성이 적은 사모펀드에 출자한 것은 MBK에 공개매수를 통한 기업개선 목적의 투자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MBK는 투자자들이 출자한 사모펀드의 투자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가진 투자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고려아연의 시가보다 높은 공개매수가격을 제시하였다는 의미는 뭘까.

경영활동의 중장기적 개선을 통해 고려아연의 실적을 개선하고 주가를 높여 투자지분을 매각 시 투자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계산을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 고객사에 대한 공급가격 조정을 통한 추가 이익 창출, 투자지분의 해외 매각을 통한 투자수익 극대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이는 오너가 아닌 주식시장 투자자들의 사모펀드를 통한 주주 중심 지배구조 개편 및 주주가치 기업경영 확립으로 수익 극대화라는 교과서적인 투자 전략이다.

MBK의 공개매수 제안 이후 고려아연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다양한 방안과 함께 언론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먼저, 영풍은 1대 주주의 지위를 MBK에 내주면서까지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고려아연 경영진의 교체를 통한 고려아연의 정상화를 주장한다. 반대로, 고려아연 경영진은 고려아연의 경영주체로서 영풍의 부적절성, MBK의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한 경영개선활동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고려아연 경영진의 공식적인 주장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언론들은 고려아연 경영진이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고려아연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내 대기업 고객사들 또는 일본의 대형 투자기관이 대항매수에 나설 수 있도록 협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특이한 현상은 고려아연이 소재한 울산 지역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합심하여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1인 1주 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과열되고 있는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먼저, 현재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다. 이는 MBK의 공개매수 후 경영활동개선을 통한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더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이거나, 대항매수에 의한 주식 모집일 수 있다. 문제는 공개매수가 대항매수에 의해 실패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주가는 크게 폭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고려아연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에 의해 주식을 매집한 소액주주들은 큰 투자손실을 보게 되어 정보의 진원지를 상대로 소액주주집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대항매수에 참여한 기업의 주주들은 대항매수를 결정한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와는 별도로 필자는 경험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보여준 집단지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결국,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성사 여부는 그동안 손님대접만 받아온 일반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다. 공개매수든 대항매수든 이러한 손님들이 주주로서 자신들의 경제적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주주가치 확립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사태라는 진통을 겪고 있다. 그동안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하에서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해온 우리 전통기업들은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오너들이 회사를 위해서 해왔던 모든 경영 의사 결정들을 앞으로는 주주 가치라는 관점에서 재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업들에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MBK와 같은 사모펀드에 자신들의 투자금을 집합시켜 공개매수라는 칼을 받으라고 할 것이다.


최영근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