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영토 포기 요구, 너무 급진적" 발언에… 트럼프·美공화, 우크라에 십자포화

입력
2024.09.26 18:30
사흘 전 젤렌스키 말에 발끈한 트럼프
"우크라, 돌아갈 곳도 없는데 돈 축내"
공화당은 '주미 우크라 대사 경질' 요구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점령당한 자국 영토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그들의 건물은 무너졌고 도시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사람에게 수십억 달러를 퍼 주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선거 유세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겨냥해 날 선 공개 발언을 쏟아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빼앗긴 자국 영토를 포기하지 않는 데 대해 '쓸데없이 미국의 군사 지원금을 축낸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평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반대했던 점을 감안해도, 유독 공격적인 언급이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 '트럼프의 뒤끝 때문'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사흘 전 공개된 미국 잡지 뉴요커의 젤렌스키 대통령 인터뷰가 화근이었다고 한다. 지난 22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당 인터뷰에서 '점령된 영토 포기'를 압박하는 JD 밴스 상원의원(부통령 후보) 등 트럼프 대선 캠프 인사들에 대해 "너무 급진적인 희생 요구"라고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끈해 이날 말폭탄을 쏟아낸 것이라는 게 CNBC의 설명이다.

사실이라면 단지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맹국 수반을 가차 없이 적대시한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가 나를 향해 더럽고 작은 험담(nasty little dispersion)을 하고 다닌다"며 "나는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과 잘 지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젤렌스키의 '회담 요청'도 거절

'트럼프의 뒤끝'은 말에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NBC방송은 이날 트럼프 캠프 인사들을 인용, "뉴요커 인터뷰를 빌미로 트럼프가 젤렌스키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측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오랜 기간 타진했으나, 뉴요커 인터뷰에 불쾌감을 느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바이든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만 면담한 뒤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대 기조는 미국 공화당에도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국 우크라이나 대사를 경질하라'는 요구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 미국 민주당 인사들과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군수 공장을 방문한 것과 관련, "해리스 캠프를 지원하는 대선 개입 행위"라며 항의한 것이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민주당은 공화당이 제기한 의혹을 일축했다. '해당 공장이 우크라이나 지원 군수품을 생산해 감사를 표하는 차원에서 방문했고,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었을 뿐'이라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 측 해명이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3억7,500만 달러(약 5,019억 원) 규모의 군사 장비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에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용 탄약 등이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26일에도 "우크라이나군 지원을 위한 추가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종 기자